박근혜 대통령은 25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일자리 창출과 투자를 가로막고 있는 규제들을 한꺼번에 단두대에 올려 처리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 3월10일 청와대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규제를 “우리가 쳐부술 원수” “암 덩어리” 등이라고 표현했던 것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 것이다. 이런 발언은 규제 개혁에 대한 대통령의 소신과 의지가 얼마나 강한지를 보여주기에는 충분했다. 하지만 대통령이 이런 섬뜩한 단어들을 여과 없이 토해내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지는 매우 의문이다.
잘 알다시피 단두대는 프랑스 혁명 당시 왕족과 귀족, 정적들을 처형한 공포정치의 상징물이다. 너무나 많은 생명이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것처럼, 우리 사회의 규제들도 마구잡이로 목이 싹둑 잘려나가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우선 앞선다. 대통령이 먼저 흥분하면 아랫사람들 사이에서는 충성심 경쟁이 가속화돼 필요 이상으로 ‘오버’하는 것이 관료사회의 생리다. 그렇지 않아도 무차별적인 규제 완화의 조짐은 이미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관광 진흥을 이유로 환경보호 규제를 풀고, 해외 환자 유치를 빌미로 의료 규제를 완화하는 조처가 서비스 산업 육성이니 투자 활성화니 하는 이름으로 추진되고 있다. 여기에 대통령의 강경한 발언까지 겹쳐지면 이런 흐름은 더욱 빨라질 수밖에 없다. 노동계에서 “기존의 ‘정리해고 요건’을 단두대로 보내려는 것 아니냐”는 반응이 나오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박 대통령이 구사하는 언어의 섬뜩함은 그 자체로도 많은 문제를 안고 있다. 박 대통령은 예전에는 건조하지만 그래도 정제된 언어를 구사했지만, 언제부터인가 섬뜩하고 살벌한 느낌을 주는 단어들을 즐겨 사용하고 있다. 가뜩이나 대통령의 소통 부재가 문제가 되고 있는 상황에서 이런 언어들은 그 자체로 사회를 경직시킨다. 자극적인 단어의 남발은 국가 최고지도자가 초조함과 강박증에 사로잡혀 있음을 보여주는 한 단면이기도 하다.
박 대통령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이런 살벌한 언어가 아니라 따뜻한 온기와 촉촉한 감정이 묻어나는 언어들이다. 그래서 고단한 삶에 지친 국민을 다독이고 위로하는 말이 더 많아져야 한다. 하지만 세월호 사건에서도 나타났지만 박 대통령은 진정성이 담긴 ‘따뜻한 말 한마디’에는 인색하기 짝이 없다. 언어는 사용하는 사람의 의식을 그대로 반영한다. 박 대통령이 자꾸만 국민의 염원과는 정반대의 방향으로 달려가는 것 같아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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