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경환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5일 저녁 출입기자들이 참여한 정책세미나에서 “정규직에 대한 과보호로 기업이 겁이 나 인력을 뽑지 못하는 상황”이라며 ‘정규직 과보호론’을 제기해 파문이 일고 있다. 전날 기재부 경제정책국장이 ‘해고의 절차적 요건 합리화’를 언급했는데, 최 부총리의 발언은 같은 맥락으로 들린다. 즉 정규직 고용유연성을 높이겠다는 정부 의지를 내비친 것으로 볼 수 있다.
최 부총리의 이번 발언은 노사정위원회의 노동시장 개혁안 논의를 앞두고 나왔다는 점에서 무게감이 다르다. 정규직 과보호를 해소하고 고용유연성을 높인다는 것은 결국 정리해고 요건을 완화하거나 임금 체계를 기업에 유리하게 개편하겠다는 뜻이다. 만약 정부가 이런 뜻을 담은 노동시장 개혁안을 다음달 중 열리는 노사정위 회의에 들고나온다면 황당한 일이다. 애초 정부는 비정규직 처우 개선과 축소에 개혁안의 초점을 맞추는 듯했는데 엉뚱하게도 정규직의 고용 불안 등을 야기하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기 때문이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격차와 차별이 심한 것은 우리 노동시장의 구조적인 병폐이며 고질적인 문제다. 여기에는 단지 노동 관련 법령뿐만 아니라 거시경제 정책, 사회안전망, 기업의 고용 관행 등 여러 현안과 의제들이 얽혀 있어 일시에 해법을 찾기도 쉽지 않다. 그러나 정규직 과보호론에 근거한 제도 개편은 결코 해답이 될 수 없다. 오히려 전체 노동시장의 고용불안을 부추겨 내수 기반을 더욱 약화시킬 게 뻔하다.
노동시장의 현실을 선진국과 비교해보면 정규직 과보호론은 근거도 박약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2013년 조사 결과를 보면, 한국의 정규직 고용보호지수는 34개 회원국 중에서 23위에 머물고 있다. 일부 대기업 정규직 노조의 경직된 태도를 비판할 수는 있겠으나 문제 해결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정부의 정책 역량은 비정규직의 처우와 근로조건을 개선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
경영계 일각에서도 정규직 보호 완화를 경계하는 시각이 있다. 경영계는 그동안 총량적인 노동시장 유연화의 필요성을 강조해왔다. 그러나 구체적인 형태와 방식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린다. 예컨대 대한상공회의소의 경우 정리해고 요건의 완화보다 각 사업장에서 임금과 직무의 탄력적인 조정 등 내부의 질적 유연화가 우선적인 과제라고 주장한다.
정규직 과보호론에 근거한 고용유연화 방침은 문제의 본질을 잘못 짚은데다 사회적 갈등과 소모적인 정치 공방만 야기할 가능성이 큰 만큼 정부가 거두는 게 마땅하다. 상생의 노사 관계, 고용 안정 등을 통한 성장잠재력의 회복은 정부가 일방적으로 밀어붙여서 될 일이 아니다. 노사정위원회나 국회에서 모든 이해관계자들이 참여하는 사회적 논의기구를 구성해서 철저히 타당성을 검증하고 공감대를 쌓는 과정을 거쳐야 진정한 개혁이 이뤄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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