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그룹의 지배구조를 개선하는 것은 우리 사회의 중요한 과제 가운데 하나다. 하지만 여전히 기대에 한참 못 미치는 게 현실이다. 공정거래위원회가 27일 내놓은 ‘2014년 대기업집단 지배구조 현황 정보 공개’ 자료는 되레 지배구조가 뒷걸음질했음을 보여준다. 국내외에서 치열하게 경쟁해야 하는 기업의 의사결정이 이런 상태에서 얼마나 합리적으로 이뤄질 수 있을지 걱정스럽다.
총수가 있는 39개 대기업집단 소속 계열사 가운데, 총수 일가가 1명 이상 등기이사로 재직중인 기업의 비율은 지난 4월 현재 22.8%로 한해 전에 견줘 3.4%포인트 낮아졌다. 총수 자신이 등기이사로 이름을 올린 기업 비율도 11.0%에서 8.5%로 줄어들었다. 특히 총수가 아예 등기이사로 등재되지 않은 대기업집단이 12곳이나 됐다. 등기이사가 된다는 것은 의사결정과 관련해 일정한 책임을 진다는 뜻이다. 그런 면에서 총수와 총수 일가의 등기이사 거부는, 책임은 외면한 채 막강한 권한만 행사하겠다는 얘기와 다를 바 없다.
또한 사외이사들이 이사회 안건 중에서 부결·수정한 안건은 0.26%에 그쳤다. 역시 한해 전(0.37%)보다 낮아졌다. 사외이사가 안건에 제동을 건다고 해서 무조건 박수 받을 일은 아니다. 하지만 부결·수정한 수치가 매우 낮다는 점은, 사외이사가 들러리 구실에 머물고 있다는 것 말고는 달리 해석하기 어렵다.
재벌그룹의 지배구조를 개선할 필요성이 더 커졌지만 그럴 가능성은 높지 않다. 무엇보다 정부가 별다른 의지를 보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잘 알다시피 박근혜 대통령은 후보 시절 경제민주화를 핵심 공약의 하나로 내걸었다. 그런데 대통령에 오른 뒤 태도가 달라졌다. 취임 초기에는 일감 몰아주기 규제, 신규 순환출자 금지 등의 몇가지 경제민주화 조처를 취하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뒷전으로 밀었다. 지금은 경제민주화란 말을 입에 올리지도 않고 있다. 이래서는 안 된다. 재벌그룹들은 물론 나라경제를 위해서도 결코 바람직하지 않은 일이다. 박 대통령이 생각을 바꿔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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