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교육청이 지난 11일 발표한 ‘유치원 원아모집 개선안’이 말썽이다. 무제한으로 복수지원하던 방식 대신 유치원들을 가·나·다군으로 나눠 군별로 한 곳씩만 지원할 수 있도록 했는데, 상당수 유치원이 가군에 몰리면서 집 근처의 원하는 유치원에 지원할 기회가 사실상 한 차례로 줄어드는 등 부작용이 나타났다. 27일 군별로 유치원을 고르게 배분하고 지원 기회도 네 차례로 늘리는 수정안이 나왔지만, 혼란은 가라앉지 않는 모양새다.
정책 취지는 이해 못할 바 아니다. 무제한 중복지원 탓에 일부 유치원의 경쟁률이 몇백 대 1로 치솟고, 추첨 날 가족·친지들이 여러 유치원으로 흩어져 추첨에 참가하는 진풍경이 빚어졌다. 중복 당첨에 따른 등록 포기와 재충원 등의 혼선도 뒤따랐다.
하지만 이런 폐단을 없애겠다고 마련한 정책치고는 준비가 너무 부족했다. 유치원들을 군별로 사전 안배도 하지 않은 채 덜컥 개선안을 발표했다. 정해진 횟수를 초과해 복수지원하면 합격을 취소하겠다고 했지만, 이를 걸러낼 장치가 있는지도 의문이다. 세간엔 교육청 방침을 따르는 사람만 손해 본다는 말까지 공공연히 도는 실정이다. 더구나 12월 초 원아 모집 시기를 코앞에 두고 이런 일이 벌어졌으니 ‘졸속 행정’이란 비난을 받아 마땅하다.
지원 방식만 손본다고 해서 ‘유치원 입학 전쟁’으로까지 불리는 현상을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는 없다. 학부모들의 바람은 교육의 질이 담보되는 가까운 거리의 유치원에 자녀를 보내고 싶다는 것이다. 서울시교육청은 애초의 문제의식을 충분히 숙성시켜 학부모들의 답답함을 풀어줄 수 있는 종합적인 정책을 제시해주기 바란다.
아울러 짚어둘 점은 정부·여당이 촉발한 누리과정 예산 논란이 이번 사태에 기름을 부었다는 사실이다. 내년 어린이집 보육료 지원이 끊길 수 있다는 불안감에 유치원을 선택하는 학부모들이 늘었기 때문이다. 아이들 교육·보육 문제에 정략이나 졸속으로 접근해선 안 된다는 것을 교육당국은 물론 정치권도 깊이 깨달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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