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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사설] 눈치만 보다 무산된 서울시의 ‘인권헌장’

등록 2014-11-30 18:46

‘서울시민 인권헌장’ 제정이 사실상 무산됐다. 서울시는 세계 인권의 날인 12월10일 인권헌장을 발표하려던 계획을 취소했다고 30일 밝혔다. ‘성 정체성에 따른 차별 금지’를 명시하느냐를 놓고 벌어진 논란 때문이다. 서울시는 시민 의견을 더 수렴하겠다지만, 다시 추진할 힘이 있을지는 매우 의문이다.

일이 이 지경에 이른 데는 박원순 시장 등 서울시 탓이 크다. 시민 참여로 인권헌장을 제정하겠다고 먼저 밝힌 것은 서울시였다. 시민들의 응모와 추첨을 거쳐 자치구 및 연령대별로 150명의 헌장제정 시민위원회도 구성했다. 이를 통해 의견을 수렴해 인권헌장을 완성한다는 것이 애초 계획이었다. 그렇게 권한을 주었으면 시민위원회의 결정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것이 마땅하다. 하지만 서울시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서울시는 28일 열린 제6차 시민위원회가 표결 끝에 결정한 내용을 ‘만장일치 합의가 아니다’라는 이유로 거부했다. 지난 8월부터 6차례 열린 회의 가운데, 서울시가 표결 대신 전원 합의를 요구한 것은 28일 회의가 처음이다.

서울시의 태도 돌변은 정치적 부담 때문일 것이다. 잘못된 정보와 편견에 사로잡힌 성소수자 혐오세력이 의견수렴 과정에서부터 극렬하게 반발하면서 박 시장을 ‘동성애 합법화’라며 비난하자 서울시는 대놓고 발을 빼려 했다. 논란은 피하고 보자는 생각이었을 것이다. 그런 관료적 태도로는 인권을 지킬 수 없다. 인권의 원칙을 정치적 흥정의 대상으로 삼아 소신을 버리는 것은 비난받아 마땅한 태도다.

성소수자 차별 금지가 한 사회의 인권 수준을 가늠하는 잣대가 된 지는 이미 오래다. 유엔인권이사회는 2011년 채택한 ‘성적 지향과 성 정체성에 대한 차별을 금지하는 결의안’에서 성소수자 차별을 중대한 국제인권 사안으로 규정했다. 한국도 이 결의안에 찬성표를 던졌다. 국가인권위원회법은 성적 지향에 따른 차별을 금지하고 있다. 2012년 광주광역시가 제정한 인권헌장도 성적 지향에 관계없는 시민의 권리를 선언했다. 무엇보다 차별로 고통을 겪는 성소수자에 대한 연민과 배려는 종교적 차원에서나 보편인권의 차원에서나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도 그런 내용을 담은 차별금지법, 서울 학생인권조례, 서울시민 인권헌장에 한사코 반대하는 이들이 있다. 일부는 자칫 혐오범죄 행위로 이어질 수 있는 언행도 서슴지 않는다. 그런 반인권적 행태는 맞서야 할 대상이지, 눈치를 보거나 지레 굴복할 일이 결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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