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여당은 담뱃값 인상이 금연을 유도하기 위한 것이라고 강조해왔다. ‘서민 증세’가 아니냐는 지적에 최경환 경제부총리는 ‘세수 목적이 아니라 국민 건강을 고려해서 내린 결정’이라고 여러 차례 밝혔다. 그런데 2일 예산안 처리 때 담뱃값 2000원 인상은 통과됐지만, 정작 흡연의 유해성을 알리는 담뱃갑 경고 그림 의무화는 제외됐다. 앞뒤가 전혀 맞지 않는 행태다. 이에 동조한 야당도 무책임하긴 마찬가지다.
경고 그림은 담뱃값 인상과 함께 대표적인 금연정책 수단이다. 증세 논란의 여지도 없는 간편한 정책이다. 예산부수법안으로 다룰 성격이 아니어서 이번 예산안 처리 때 제외했다는 변명을 내놓고 있지만, 뻔한 눈속임이다. 숱한 논란을 감수하면서 담뱃값 인상을 밀어붙일 만큼 국민 건강을 염려한다면 예산 정국 이전에 경고 그림 의무화부터 도입할 수 있었다. 최소한 이번에 동시 처리할 수 있도록 사전 심의 절차를 완료해뒀어야 한다. 우리나라가 이미 세계보건기구(WHO) 담배규제기본협약(FCTC)을 비준해 2008년까지 경고 그림을 도입했어야 한다는 사실까지 더해 보면, 이번 누락은 실수가 아니라 의도된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결국 담뱃값 인상의 목적은 부족한 세수를 메우기 위해 서민들의 주머니를 터는 ‘서민 증세’였던 셈이다. ‘증세 없는 복지’가 거짓말임도 더욱 분명해졌다. 담뱃값 인상으로 더 거둬들이는 세금 2조8000억원(정부 추산)은 올해 예상되는 세수 부족분 10조원의 30%에 육박하는 규모다. 한국납세자연맹은 3일 ‘담뱃값 인상의 더러운 진실 10가지’라는 자료를 내어 “가난한 서민들도 모두 부담하는 간접세를 이렇게 파격적으로 올리는 것은 극히 부당한 일”이라고 비난했다. 담뱃값은 손쉽게 올리면서 경고 그림은 한사코 도입하지 않는 걸 지켜보면서 담배회사의 로비 때문이 아니냐는 의구심도 커지고 있다.
정부·여당은 처음부터 속내를 털어놓고 이해를 구했어야 한다. 선량한 보호자 행세를 하며 뒤통수를 치니 국민의 마음이 더 불편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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