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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사설] ‘서울대 성추행 교수’ 구속 사건이 말하는 것

등록 2014-12-04 18:41

서울대 강석진 교수가 제자 등을 성추행한 혐의로 3일 구속된 것은 우리 사회에 무거운 경종을 울리는 사건이다. 최고 지성의 전당이라는 서울대학교에서 이른바 ‘갑을 관계’를 악용한 성범죄가 저질러졌다는 사실 자체가 낯부끄러운 일이다. 더욱 고약한 것은 이런 일이 몇십년 동안 천연덕스럽게 되풀이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공교롭게도 우리 사회에 ‘성희롱’이라는 단어를 처음 각인시킨 사건도 서울대에서 벌어졌다. 지도교수한테서 성희롱을 당한 우아무개 조교가 1993년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내면서 사회적 파문이 일었고, 1심과 2심의 판단이 갈리면서 숱한 논란을 빚은 끝에 대법원이 5년 만에 우 조교의 손을 들어줬다. 성범죄의 개념이 새롭게 인식되는 계기였다. 그런데 그로부터 20여년이 흐른 지금, 기시감에 의한 착각으로 느껴질 만큼 똑같은 사태가 재연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서울대만의 문제가 아니다. 최근에만도 고려대·강원대에서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전직 국회의장까지 성추행 혐의로 재판에 넘겨지는 등 ‘권력형 성범죄’가 빈발하면서 사회적 권력을 악용해 욕망을 채우려는 이들의 비뚤어진 심리가 지탄을 받고 있다. 이른바 ‘엘리트 코스’를 밟은 이들이 ‘을’의 위치에 있는 사람들에 대한 공감능력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런 진단엔 타당한 측면이 있지만, 개인 탓만 하고 넘어갈 일은 아니다. 법의 테두리를 넘는 행동을 해도 문제되지 않을 것이라는 심리의 배경에는 비합리적인 권력관계가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어떤 위계질서나 거래관계도 사람의 인격까지 지배할 수는 없다는 기본적 원칙이 아직 우리 사회에 작동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특히 대학에서 성추행 사건이 자주 발생하는 것은 대학의 뿌리깊은 병폐를 드러내는 현상이다. 학생에 대한 평가를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교수의 무소불위 권한이 모든 성추행 사건의 배경을 이루고 있다. 이는 교수-학생 관계가 ‘주인-노예의 관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대학의 학사 관리도 여전히 주먹구구식에 머물러 있다는 뜻이다. 서울대·고려대 등 성추행 사건이 불거진 대학들이 철저한 진상규명 대신 사표 수리로 서둘러 사건을 덮으려 하는 데서 나타나듯, 교수 사회의 전근대적인 온정주의도 문제다. 입시에서 서열 유지에 목매는 대학들이 정작 교육적·사회적 책무는 방기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후진적인 풍토를 숨겨둔 채 대학 평가에서 세계 몇 위를 차지한들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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