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을 대표하는 교향악단인 서울시립교향악단이 볼썽사나운 진흙탕 싸움에 휘말렸다. 사태의 중심에는 박현정 서울시향 대표가 있다. 박 대표의 언행이 추한 시비를 일으키는 데 일차적 구실을 한 것으로 보인다.
지난 2일 시향 사무국 직원 17명이 낸 호소문을 보면 박 대표는 심각한 수준의 폭언과 모욕, 성희롱을 저지르고 인사전횡까지 한 것으로 나와 있다. “장기라도 팔아야지.” “미니스커트 입고 네 다리로라도 나가서 음반 팔면 좋겠다.” “니가 보니까 애교가 많아서 늙수그레한 노인네들한테 한번 보내 볼라구.” “내가 재수때기가 없어 이런 ×같은 회사에 들어왔지.” 직원을 종 부리듯 하며 쏟아내는 이런 말에 모멸감을 느끼지 않는다면 그것이 오히려 이상한 일일 것이다. 그가 취임한 이후 사무국 직원 27명 중 절반인 13명이 퇴사하고 일부는 정신과 치료를 받았다고 한다. 이런 막말과 모욕이 횡행하는 곳에서 사람이 견뎌날 수 있겠나 하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도 박 대표는 5일 막말 논란에 대한 해명은 얼버무리면서 “직원들의 배후에 정명훈 예술감독이 있다”며 정 감독의 잘못과 서울시향 문제점을 지적하는 데 시간의 대부분을 할애했다. 정 감독이 시향을 사조직처럼 운영하거나 전횡을 휘둘렀는지는 그 자체로 따져봐야 할 문제다. 그러나 박 대표의 행동은 직원들이 일상적인 폭언과 모욕을 견디지 못하고 호소문을 낸 데 대해 성실히 답을 하지 않고 딴 문제를 들이밀어 본질을 흐리려 한다는 비난을 피할 수 없다.
이런 사태가 빚어진 데는 민간기업 출신이 조직을 더 효율적이고 선진적으로 운영하리라는 ‘기업마인드 환상’이 한 원인으로 자리잡고 있는 듯하다. 박 대표는 삼성생명 마케팅전략그룹장을 지낸 사람이다. 방만한 공조직에 효율성을 불어넣을 것이라는 기대를 안고 발탁된 사람이다. 그러나 결과는 비민주적이고 비인간적인 조직운영으로 인한 불화와 분란이다. 우리 사회가 정상화되려면 온 나라에 퍼진 ‘기업마인드’에 대한 환상부터 털어내야 한다.
사태가 이 지경이 된 데는 서울시의 책임도 있다. 서울시는 이 사태를 지난 10월 알고도 조용히 해결하려다가 오히려 일을 키우고 말았다. 서울시는 이제라도 사태의 신속한 해결에 힘을 써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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