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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사설] ‘고문 선진국’ 미국, 인권 얘기할 자격 있나

등록 2014-12-10 18:40

미국 상원 정보위원회가 9일(현지시각) 공개한 ‘중앙정보국(CIA) 고문 보고서’는 충격적이다. 보고서는 중앙정보국이 2001년 9·11 테러 이후 ‘강화된 신문’(enhanced interrogation)이라는 이름으로 자행한 잔혹한 고문 내용을 적나라하게 담고 있다. 미국 정부는 즉각 책임 있는 후속조처를 취하기 바란다.

보고서는 ‘고문 백과사전’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매달기, 잠 안 재우기, 독방이나 좁은 공간에 집어넣기 등의 ‘전통적인 고문’은 극한까지 간 형태로 실행됐다. 물고문을 발전시켜 직장으로 물을 주입하는 고문까지 이뤄졌으며, 러시안룰렛과 전동드릴 등도 동원됐다. 중앙정보국은 새로운 고문기술을 개발하기 위해 군 장교 출신의 고문기술자들이 일하는 외주업체에 거액을 지급했다고 한다. ‘고문 개발의 외주화·산업화’가 이뤄진 셈이다. 중앙정보국은 테러 용의자로부터 정보를 빼내려면 고문이 불가피하다고 주장하지만, 실제 성과는 별로 없었다고 보고서는 지적했다. 많은 고문이 법이 허용하는 테두리를 벗어난 것은 물론이다.

고문 실태 공개를 막으려 한 미국 정부의 태도도 문제다. 보고서를 작성해 공개하기까지 무려 5년이 걸렸으며, 그사이 중앙정보국과 정부의 방해 시도가 집요하게 이뤄졌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보고서 공개 직후 중앙정보국의 ‘가혹한 신문 기법’을 비판했지만 그 또한 실태 공개에 소극적이었다. 관련자의 책임을 요구하는 내용이 보고서에서 아예 빠진 것은 이런 우여곡절의 산물이다. 미국 정부는 이제라도 관련된 중앙정보국 및 정부 관리들에 대한 법적 조처에 나서야 한다. 유엔 성명이 밝혔듯이 이런 잔혹한 고문은 “국제 인권법에 어긋나는 조직적 범죄와 엄청난 인권 침해”이기 때문이다.

미국은 지구촌의 인권 수호자로 자처해왔다. 인권 침해를 이유로 다른 나라에 무력을 행사한 것도 한두 차례가 아니다. 하지만 미국이 인권 등과 관련된 사안에서 자신을 예외로 놓는 이중 기준을 적용한다는 비판도 끊이지 않았다. 미국 정부가 이번에 분명한 태도를 보이지 않는다면 그런 비판은 더 커질 것이다. 당장 북한 인권 문제에 대한 유엔 안보리의 논의도 더 어려워질 수 있다.

미국은 ‘고문 선진국’이라는 오명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이는 미국의 국제적인 지도력 유지에도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번 일의 심각성을 알아야 한다. 미국이 앞으로 어떤 모습을 보일지 세계가 지켜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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