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관·군 병영문화혁신위원회가 국방부에 권고한 22개 혁신과제가 18일 발표됐지만, 병영의 어두운 인권 현실을 근본적으로 개선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방안들이다. 육군 22사단 총기난사 사건, 28사단 윤 일병 집단구타 사망 사건과 같은 참사가 되풀이되지 않으려면 무엇보다 악습의 자양분인 군의 폐쇄성부터 걷어내야 하는데, 이를 위한 핵심 사안들에서 결정적인 한 발을 내딛지 못했다.
군사 옴부즈맨 제도가 대표적이다. 대형 사고가 터질 때마다 대책으로 제시됐지만 군의 반발로 흐지부지되곤 했던 옴부즈맨 제도가 이번 권고에 포함된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하지만 병영혁신위 방안처럼 차관급을 기관장으로 국무총리 산하에 설치해서는 독립적이고 실질적인 감시 역할을 기대하기 어렵다. 국방부와 같은 행정부 소속인데다 기관의 위상도 상대적으로 낮기 때문이다. 이와 달리 옴부즈맨을 의회에 둠으로써 실효를 거둔 독일의 사례는 익히 알려져 있다. 혁신의 절박성을 생각한다면 독일보다 더 획기적인 발상까지도 요구되는 상황에서 병영혁신위의 방안은 실망스럽기 그지없다.
군대 내 범죄행위가 근절되지 않는 데는 군 수사·사법기관이 제구실을 못한 탓도 크다. 군에서 자녀를 잃은 수많은 부모가 부실한 수사와 은폐, 미온적 처벌 등으로 피눈물을 흘렸다. 군 사법절차가 공정성을 확보하려면 군 검찰과 법원이 지휘계통으로부터 완전히 독립하는 길밖에 없다. 영국·독일 등 서구 선진국들은 이미 군 법원과 검찰을 문민화한 지 오래다. 그러나 병영혁신위는 이런 근본적 개혁안을 내기는커녕, 군 지휘관의 사법적 개입을 막을 최소 조건인 심판관·감경권 제도의 완전 폐지조차 권고하지 않았다.
게다가 병영혁신위는 군 가산점 제도 같은 엉뚱한 논란거리를 던져 개혁의 초점을 흐려놓았다. 군 가산점 제도는 이미 헌법재판소가 위헌 결정을 내렸다. 병사의 사회복귀 지원이라는 국가의 책임을 재정적 투자 없이 손쉽게 모면하려는 저급한 정책이라는 비판도 받는다.
앞으로 군은 이런 곁가지 사안으로 국민의 시선을 돌리려 할 게 아니라, 군사정권 시절의 유물인 폐쇄성과 기득권을 과감히 던져버리는 결단의 시간을 가져야 할 것이다. 강군의 전제조건인 국민의 신뢰를 회복할 유일한 방법이다. 국방부가 내년 초 최종 혁신안을 낼 때까지 국회도 적극 개입해 말 그대로 혁신을 이룰 방안을 만들기 바란다. 억울하게 죽어간 수많은 ‘윤 일병’들의 비극을 결코 잊어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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