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 ‘수서발 고속철도(KTX) 민영화 반대’를 내걸고 파업을 벌인 김명환 위원장 등 철도노조 간부들에게 22일 무죄가 선고됐다. 당시 정부는 김 위원장 등을 검거하기 위해 사상 처음으로 민주노총 본부에 경찰력을 투입하는 등 초강경으로 대처했지만 파업은 역대 최장기인 23일 동안 이어졌다. 이에 정부는 176명을 무더기 기소했는데, ‘주범’ 격인 김 위원장 등에게 무죄 판결이 난 것이다.
서울서부지법의 이번 판결은 노동자들의 파업에 ‘전가의 보도’처럼 업무방해죄를 들이대 형사처벌하려 드는 정부의 관행에 다시금 경종을 울렸다. 이미 2011년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파업의 목적 등이 부당하더라도 “사용자가 예측할 수 없는 시기에 전격적으로” 돌입하지 않는 한 업무방해죄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판례를 세운 바 있다. 서부지법 판결은 이 대법원 판례를 충실히 따른 결과다.
한편 8월 대법원은 2011년 판례를 과거로 되돌리는 듯한 판결을 내리기도 했다. ‘정치 파업’처럼 목적이 부당한 경우 사용자가 파업 강행을 예측하기 어렵다는 이상한 논리를 들어, 목적의 부당성과 예측 가능성을 뒤섞어 버린 것이다. 이런 논리에는 문제점이 있지만, 이번 서부지법 판결은 이와도 모순되지 않는다. 고속철도 민영화 반대 파업은 ‘정치 파업’과 다른 ‘경영간섭 파업’이므로, 비록 목적의 정당성은 없지만 예측 가능성은 있었다고 구분해 판단한 것이다. 법리적으로 매우 정교하고 합리적인 판결이다.
그럼에도 이번 판결이 상급심에 가면 뒤집힐 것이라는 우려가 벌써 나오고 있다. 사법부 구성원들이 무겁게 받아들여야 할 대목이다. 법과 양심에 따라서만 판단해야 할 대법원·헌법재판소 등 최고 사법기관이 갈수록 이념적 편견이나 정치적 고려에 휘둘려 사회적 약자·소수파의 권리를 외면하고 있다는 세간의 불안감을 직시해야 한다. 전세계에서 파업을 업무방해죄로 처벌하는 것은 우리나라가 유일하다. 사법부가 엉성한 법리를 동원해 정부의 후진적 조처를 손들어주는 일은 더 이상 없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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