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의 김기춘 비서실장과 박준우 전 정무수석 등이 세월호 사고 이튿날 박근혜 대통령의 진도체육관 방문을 다룬 <한겨레> 보도로 명예훼손을 당했다며 낸 소송에서 패소했다. 이들은 박 대통령이 가족을 잃고 홀로 구조된 권아무개양을 위로하는 장면을 두고 ‘연출 논란’이 제기됐다는 보도가 자신들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정정보도와 8천만원의 손해배상을 요구했으나 법원은 “김 실장 등을 피해자로 볼 수 없다”며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법원의 이번 판결은 학계 이론이나 대법원 판례 등에 비춰 볼 때 이미 충분히 예상됐던 판결이다. 공직자에 대한 보도에서 명예훼손죄가 성립하려면 내용상 다소 오류나 과장만으로는 부족하고 ‘의도적 악의’가 입증돼야 한다는 것이 법률적 상식이다. 그런데 기사에 이름 한 자 등장하지 않는 사람들이 나서서 자신들의 명예가 훼손당했다며 소송을 냈으니 그것부터가 한 편의 코미디였던 셈이다.
청와대가 소송을 제기한 언론사는 단지 한겨레만이 아니다. 세월호 사건 당시 보도를 문제 삼아 <시비에스>(CBS)를 상대로도 비슷한 소송을 제기했으며, 최근 ‘정윤회씨 국정개입 보고서’ 보도와 관련해서는 <세계일보> <동아일보> 등을 명예훼손 혐의로 검찰에 줄줄이 고소한 상태다. 청와대가 이처럼 언론사를 상대로 소송을 남발하는 이유를 짐작하기란 어렵지 않다. 관련 사안에 대해 해당 언론사는 물론 다른 언론사들의 입까지 틀어막는 수단으로 소송만큼 효과적인 것이 없다고 여기고 있는 것이다. 어찌 보면 청와대는 소송의 결과는 애초부터 염두에 두지 않고 있는지도 모른다. 실제로 언론사 상대 소송들에서 청와대가 승소할 가능성도 별로 없다는 게 법조계의 대체적인 관측이다.
김기춘 실장 등이 하필이면 ‘명예’를 들먹이는 것도 쓴웃음을 짓게 한다. 세월호 사건 같은 대형 참사가 일어났는데 대통령에게 대면보고조차 못한 것이야말로 비서실장으로서는 결코 있을 수 없는 불명예다. ‘정윤회씨 국정개입 보고서’ 처리 과정에서 보인 김 실장의 어처구니없는 태도 역시 비웃음의 대상이다. 진실로 명예를 소중히 여기는 사람이라면 소송에 앞서 그 자리에서 물러나는 것이 온당한 선택이다.
청와대는 한겨레에 대한 소송 패소의 의미를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 그래서 지금이라도 다른 언론사들에 대한 소송과 고소 등을 취하하는 것이 옳다. 그것이 그나마 더 이상의 창피를 면하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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