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와 최경환 경제부총리가 24일 수감된 기업인들의 가석방을 주장하고 나섰다. 내년 설을 앞둔 ‘여론 떠보기’로 보인다. 추석 전인 9월에도 황교안 법무부 장관 등이 같은 말을 했다.
이런 모습은 전형적인 ‘말바꾸기’다. 박근혜 대통령은 대선 때부터 기업인에 대한 사면권의 엄격한 제한을 공약했다. 사면 대신 가석방 얘기가 나오자 청와대는 “가석방은 법무부 장관의 고유 권한”이라며 짐짓 뒷짐을 지는 모양새이지만, 보통사람들의 눈에는 사면이나 가석방이나 형량을 줄여 풀어주기는 마찬가지일 것이다. 가석방에 대해서도 법무부는 지난해까지 사회 지도층의 가석방은 원칙적으로 불허한다고 밝혔다.
원칙의 ‘표변’이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의 ‘땅콩 회항’ 사건 와중에 벌어진 것도 의아하다. 조 전 부사장 사태는 국가의 지원과 국민의 희생 위에 성장해온 기업을 전적으로 제 소유인 양 제멋대로 휘둘러온 재벌가의 황제적 행태에서 빚어진 것이라고 봐야 한다. 비리 기업인들도 대부분 기업 돈을 제 것인 양 함부로 써온 ‘황제경영’으로 인한 범죄에 책임을 진 것이다. 황제경영은 외환위기와 금융위기에서 국가경제를 위기로 몰아넣은 주범이기도 하다. 그런 인식이 있었기에 배임·횡령 따위 기업인 범죄를 엄벌하고 사면도 제한하기로 한 것이다.
가석방 주장이 ‘경제 살리기’를 핑계삼는 점은 더욱 개탄스럽다. “투자는 오너(재벌 총수) 결심 없으면 못한다”지만, 재벌기업의 그런 왜곡된 의사결정 구조야말로 바로 기업과 국가를 여러 차례 위기로 몰아넣은 황제경영의 악습이다. 비리 기업인을 풀어준다고 실제로 투자가 늘어나고 경제가 활성화되는지도 의문이다. 지금 같은 세계적 경기침체기에는 투자를 한들 시늉에 그치기 십상이다. 수십년간 기업인을 그만큼 풀어줬으면 투자 활성화와 고용 확대 따위 ‘사면 효과’가 실제 드러났어야 했겠지만, 그런 실증적 수치도 전혀 없고 도무지 체감을 할 수도 없다.
기업인이라고 ‘역차별’할 일은 물론 아니다. 형법에는 형기의 3분의 1 이상을 채우면 가석방 심사 대상이 된다고 규정하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실제로는 형기를 80% 이상 채워야만 그나마 가석방 심사가 이뤄지고, 대부분의 수형자는 형기를 100% 채우는 게 현실이다. 그런 기준에 못 미치는데도 비리 기업인을 풀어준다면 ‘유전무죄’ 논란은 더 심해질 것이다. 눈 가리고 아웅 하는 핑계로 비정상의 과거로 퇴행하는 일을 정당화하려 해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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