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과 미국이 열흘 이상 사실상의 ‘사이버 전쟁’을 벌이고 있다. 양쪽 다 자신이 사이버 공격을 했다고 하지는 않으면서 상대의 공격을 비난하고 있다. 두 나라는 실익도 없이 관계를 더 악화시킬 게 분명한 공방전을 당장 중단하기 바란다.
북한 국방위원회 정책국은 27일 계속되는 인터넷망 불통 사태의 배후로 미국을 지목했다. 북한의 주요 인터넷 사이트들이 23일부터 접속 불량 상태를 나타낸 이후 북한 당국이 공식 반응을 내놓은 것은 처음이다. 북한은 특히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을 ‘열대수림 속에서 서식하는 원숭이’라고 비난했다. 북한의 이런 태도는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을 겨냥한 암살 시도를 그린 미국 영화 <인터뷰>에 대한 것만큼이나 도발적이다. 북한 당국은 이 영화가 자신의 공개 비난에 힘입어 오히려 인기리에 상영되는 현실을 눈여겨봐야 한다.
앞서 영화 제작사인 소니에 대한 해킹과 테러 위협을 확실한 근거 없이 북한 짓으로 단정한 미국 태도도 문제가 있다. 미국 정부는 소니가 개봉 취소 결정을 뒤집도록 유도했다는 의심을 받고 있다. 소니가 결국 개봉에 나서자 오바마 대통령이 바로 칭찬 발언을 한 것도 지나치다. 나아가 미국 정부가 직접 북한 인터넷망에 대한 공격을 벌였다면 국제적인 비난을 피하기 어렵다. 북한이라는 나라 전체의 인터넷망을 차단하려는 것으로, 소니에 대한 해킹과는 차원이 다르기 때문이다. 이는 오바마 대통령이 공언한 ‘비례적 대응’에도 어긋난다.
사이버 공격은 특성상 공격자를 확정하기가 쉽지 않다. 이번 사안에서도 북한과 미국 정부가 직접 공격에 나섰다는 명확한 증거는 나오기가 어렵다. 이런 상황에서 상대의 악의를 전제하고 공세적으로 대응한다면 사태 악화는 불 보듯 뻔하다. 미국의 사이버 역량이 세계 최고 수준이더라도 갈등이 계속될 경우 일정한 피해를 피할 수가 없다. 게다가 북한이 다른 수단을 동원하지 않으리라는 보장도 없다.
북-미 관계는 북한 핵·미사일 문제에다 인권 문제까지 겹치면서 오바마 정부 출범 이후 최악의 상태다. 이대로 간다면 북한 핵·미사일 문제도 더 나빠질 수밖에 없다. 지금은 새 갈등을 추가할 게 아니라 관계 개선의 전기를 마련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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