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일 전체 내용이 공개된 ‘북한 핵·미사일 위협에 관한 한·미·일 정보공유 약정’은 내용과 형식, 추진 방식 등에서 모두 문제가 많다. 정부는 이 약정이 이미 이날 0시를 기해 발효했다고 말하지만, 체결 여부를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마땅하다.
정부가 국회에 보고하지도 않은 채 지난 26일 이 약정에 서명한 것 자체가 잘못이다. 정부는 ‘정부 간 협정’이 아니라 ‘국방당국 간 약정’이므로 국회 비준이 필요하지 않다고 주장하지만, 이는 국민을 우습게 여기는 오만한 행태다. ‘나라 사이 상호원조, 안전, 국민에 부담을 끼치는 문제라면 이름을 불문하고 국회의 비준동의를 받아야 하는 조약에 해당한다’고 한 1999년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위배됨은 물론이다. 그동안 이 사안을 투명하게 추진하겠다고 해온 정부 스스로의 약속에도 어긋난다.
이 약정의 추진 배경과 내용은 더 문제가 심각하다. 미국이 이 약정 체결을 밀어붙인 주된 이유는 사실상의 한·미·일 군사동맹 구조를 만들려는 데 있다. ‘북한 핵·미사일 위협에 관한 정보’는 미국이 주도하는 동아시아 미사일방어(엠디) 체제 구축과 직결되며, 이 엠디는 중국을 핵심 대상으로 한다. 미국으로선 한국과 일본을 자신의 편에 묶어 대중국 전선에 나란히 세우기 위한 기본 틀로 이 약정이 필요한 것이다. 일본에도 이 약정은 큰 이익이 된다. 우리나라와 일본이 북한이라는 공통의 적을 상정해 군사정보를 교환하는 것 자체가 아베 신조 정부가 추진하는 군사대국화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게다가 일본은 자연스럽게 한반도에 대한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주장할 여지가 커졌다.
우리나라는 실익도 거의 없으면서 외교·안보 입지가 좁아질 수밖에 없다. 북한 핵·미사일 위협에 관한 정보는 한-미 동맹의 틀 안에서 충분히 확보할 수 있다. 일본에 기댈 이유가 없다. 반면 과거사 문제에 대한 일본의 태도는 더 뻣뻣해질 것이다. 이 약정을 자신에 대한 한·미·일 군사협력 강화로 보는 중국의 반발도 부담이 된다. 북한 또한 핵·미사일 역량을 더 강화하려 할 가능성이 크다. 이 약정은 결국 ‘한·미·일 대 북·중·러’의 신냉전 안보구도로 이어질 중요한 계기가 될 수 있다.
정부는 전시작전권 환수 재연기라는 ‘독사과’를 미국에게서 얻어내는 대가로 서둘러 이 약정 체결에 나선 것으로 의심된다. 갈수록 진창에 빠져드는 모양새다. 정부가 약정 체결을 재검토하지 않는다면 국회가 나서서 잘못을 바로잡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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