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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사설] ‘연대와 대중성 회복’이 진보개혁세력의 살길

등록 2014-12-30 18:34


헌법재판소의 통합진보당 강제해산 결정은 우리 사회 진보개혁진영에 무거운 짐을 안겼다. 헌재 결정은 민주주의 기본 원칙의 심각한 훼손이며, 사태가 이 지경까지 온 데엔 박근혜 정권의 퇴행적 인식이 자리잡고 있다. 그러나 이런 외적 상황과는 별개로, 진보개혁진영의 잘못은 없었는지 냉철히 성찰해볼 필요가 있다. 그래야 이번 사태를 계기로 진보개혁세력이 대중적 기반을 좀더 단단히 하면서 앞으로 나갈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최근 진보개혁진영에선 다양한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진보 인사들과 시민사회단체가 참여하는 ‘통합진보당 강제해산 반대 원탁회의’가 열렸고, 새로운 ‘진보적 대중정당’을 표방하는 국민모임이 발족했다. 통합진보당 재건을 주장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여기에 제1야당인 새정치민주연합은 오는 2월 당 지도부를 새로 선출하는 중요한 전당대회를 앞두고 있다. 야당의 지도체제 개편과 새로운 정당 추진, 진보 정당의 재건, 박근혜 정권에 대한 반대운동 등이 얽혀 있는 복잡한 형국이다.

집권세력을 견제·비판하는 방향으로

제1야당의 지리멸렬함으로 인해 현 정권의 폭주를 적절하게 견제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새로운 정치적 흐름이 출현하는 건 피할 수 없는 일이다. ‘통합과 연대’란 기치만으로 이런 움직임을 막을 명분은 현실적으로 없다. 모든 야권 정당이 하나의 우산 아래 헤쳐모이든, 다양한 정치적 성향에 따라 서로 다른 진로를 모색하든 그건 각 정치세력의 선택일 것이다. 다만, 모든 정치세력이 마음에 담아야 할 몇 가지 기본 원칙은 있다고 본다. 우선, 박근혜 정권이 시대를 거슬러 나가는 상황에서 진보개혁진영의 움직임은 이를 막아내는 데 최우선 순위를 둬야 한다는 점이다. 현 정권에 대항할 수 있는 힘을 분산시키는 쪽으로 진보개혁진영 재편이 진행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이런 점에서 헌재 결정 이후 야당 일부에서 제기하는 ‘민주당(새정치민주연합)과 통합진보당의 야권연대 실패론’은 적절치 않다. 서로 정치적 지향은 달라도 큰 틀에서 현 정권을 견제하고 비판하는 데엔 한목소리를 낼 수 있어야 한다. 2012년 대선에서 문재인 후보가 얻은 48%의 국민 지지엔 새정치연합 지지자뿐 아니라 다양한 진보 정당 지지자들의 표가 함께 섞여 있다. 그 의미를 특히 제1야당인 새정치연합은 잊지 말아야 한다. 이념 지형이 새누리당에 절대 유리한 우리 정치현실에선 폭넓은 연대만이 진보개혁세력의 집권을 가능하게 할 수 있다.

둘째,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그 당이 제시했던 전향적인 정책들을 계승하는 데 인색해선 안 된다. ‘종북 프레임’ 때문에 통합진보당에 무조건 거리를 두는 듯한 태도를 취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통합진보당 내부의 패권주의와 비민주적 행태는 거센 비판을 피하기 어렵지만, 경제·노동·복지 등 분야에서 기성 정당을 뛰어넘는 의제를 제기해 정치적 지평을 넓힌 공로는 결코 작지 않다. 요 몇년간 우리 정치권의 핵심 이슈인 ‘경제민주화’ 문제를 처음 제기한 것도 통합진보당이었다. 이런 점이 통합진보당과 그 전신인 민주노동당이 한때 국회의원 총선에서 13%에 달하는 정당득표율을 얻도록 한 원동력이었다. 통합진보당 정책의 긍정적인 부분들은 진보개혁세력이 포용해야 할 대상이지, 거리를 둘 대상은 아니다.

대중 불신 자초한 책임 철저히 반성해야

셋째, 통합진보당의 문제점에 대해선 당의 핵심 그룹뿐 아니라 진보개혁진영 내부에서 철저하게 반성해야 한다. 진영 내부의 잘못에 눈을 감는 건 잠시는 괜찮을지 몰라도 궁극적으론 진보개혁세력 전체의 대중적 토대를 약화시킨다. 내부 비판을 강화하는 게 오히려 진보진영을 건강하게 하고 새로운 전진의 토대가 될 것이다. 통합진보당은 어느 순간부터 정책보다 당내 패권싸움이 국민의 시선을 끄는 당이 됐다. ‘대중적 진보정당’에서 대중이 소거된 것이다.

유권자들이 궁금해하는 부분에 대해 솔직하게 답변해야 하는데 통합진보당 지도부는 그러질 못했다. 북한 인권 문제나 3대 세습에 침묵하는 듯한 모습은, 아무리 국가보안법이 존재하는 현실을 고려하더라도 ‘대중정당’을 표방하는 조직으로선 잘못된 태도였다. 누구나 신념에 따라 정치활동을 할 자유가 있으며, 통합진보당 인사들 또한 마찬가지라고 믿지만, 통합진보당 인사들이 정치활동을 재개하더라도 이런 부분에 대한 반성과 혁신 없이는 지지를 얻기 힘들다는 걸 뼈저리게 인식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제1야당인 새정치민주연합에 바란다. 사법적 판단에 의해 정당이 강제해산되는 사태까지 온 데엔 무기력한 제1야당의 책임이 작지 않다. 지난 대선에서 얻은 지지율만큼이라도 현 정권을 제대로 견제했다면 지금처럼 전방위적으로 민주적 가치의 후퇴가 일어나진 않았을 것이다. 새정치연합은 곧 새 당대표를 뽑기 위한 경선에 들어간다. 다양한 가치와 세대를 대변하는 경쟁구도를 기대했지만, 지금 사정은 그렇지 못하다. ‘그 나물에 그 밥’이란 소리를 들어도 딱히 할 말이 없다. 그럴수록 당대표 선거가 과거 회귀적으로 흐르거나 지역 대결 또는 친노·비노 싸움으로 흐르지 않도록 해야 한다. 새정치연합이 계속 진보개혁세력의 중심추가 될 수 있느냐가 이번 전당대회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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