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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사설] ‘을’의 수난 여전한 을미년 새해

등록 2015-01-05 18:29수정 2015-01-05 21:14

서울 도봉구의 한 아파트에서 장애인 주차구역에 주차하던 동대표에게 다른 곳에 주차해달라고 요청한 경비노동자가 지난달 31일 석연치 않은 이유로 해고됐다고 한다. 정확한 경위가 확인되진 않았지만, 평소 성실한 근무 태도로 주민들의 신뢰를 샀던 이 경비노동자가 예정에 없이 해고된 것은 동대표의 주차를 만류한 일과 관련이 있다는 의혹이 제기된다. 또 지난달 27일 경기도 부천의 한 백화점에서 고객이 아르바이트 주차요원의 무릎을 꿇렸다는 글과 관련 사진이 인터넷에 퍼지며 논란을 빚고 있다.

지난해에는 서울 압구정동 아파트 경비노동자 분신과 ‘땅콩 회항’ 등 ‘갑’의 횡포가 커다란 공분을 일으킨 사건이 많았다. 비정상적인 ‘갑을관계’가 사회적 화두로 등장한 지도 여러 해째다. 이쯤 되면 사회적으로나 개인적으로나 성찰의 기제가 작동할 만도 한데, 새해에도 역시나 ‘을’의 수난이 여전한 것 같아 씁쓸하기 그지없다.

장애인 주차구역에 비장애인이 주차하지 못하도록 막는 것은 경비노동자로서 너무도 당연한 임무를 성실히 수행한 것일 뿐이다. 이것이 해고에 조금이라도 영향을 끼쳤다면 그야말로 비정상이 정상을 질식시킨 최악의 ‘갑질’이라고 하겠다. 고객이 서비스노동자를 무릎 꿇리는 행위는 대형마트 비정규직 노동 문제를 다룬 영화 <카트>가 그린 것처럼 가장 혐오스러운 ‘갑질’의 하나다. 서비스노동자에게 설사 잘못이 있더라도 고객 쪽이 대처할 합리적인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

볼썽사나운 ‘갑질’은 고용-피고용, 고객-직원 같은 현대적 인간관계에 전근대적인 신분의식이 개입할 때 나타난다. 이를 가능하게 하는 것은 ‘인격 대 인격’의 대등한 관계를 비틀어버리는 비정규직 차별, 권위적 기업문화, 과도한 서비스 경쟁 등 구조적인 적폐들이다. 상대방을 짓눌러 쾌감을 얻는 천박한 개인들이 응당한 대가를 치르는 것과는 별개로, 정부와 기업이 책임을 느끼고 제도적인 ‘갑질 방지’에 나설 필요가 있다. 지난해 뼈아프게 확인했듯이 나라의 품격이 걸린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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