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제역 공포가 또 전국 축산농가를 뒤덮고 있다. 지난해 12월 초 충북 진천의 한 농가에서 발생한 뒤 방역당국의 적극적인 차단 노력에도 구제역 바이러스가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는 4일 현재 기준으로 충북·충남·경북·경기 등의 농장 32곳에서 구제역 발생을 확인하고, 2만6000여마리의 돼지를 매몰 처분했다고 5일 밝혔다. 병든 가축들을 이처럼 대규모로 생매장하는 것은 4년여 전에 있었던 사상 최악의 구제역 악몽을 떠올리게 한다.
구제역은 축산농가에서 가장 두려워하는 악성 가축 질병이다. 구제역 확진 딱지가 붙은 농장은 물론이고 반경 5㎞ 안에 있는 농장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끼친다. 이동 제한과 소비 위축 등에 따른 간접적 피해도 만만찮다. 국내에선 2010년 가을부터 2011년 봄까지 매몰 처분한 가축만 350만마리에 이르는 끔찍한 구제역 사태가 있었다. 그 뒤 한참 동안 잠잠해진 덕분에 지난해 4월 세계동물보건기구 총회에선 한국의 ‘구제역 청정국’ 지위가 회복되기도 했다.
그런데 몇 달 만에 다시 구제역 창궐 지역으로 전락하게 됐다. 게다가 점점 변화무쌍한 양상으로 발병하고 있다. 농식품부는 최근 구제역은 대부분 백신 접종을 하지 않은 돼지에서 발생했으며, 바이러스에 오염된 차량을 통해 번지고 있는 것으로 파악한다. 이런 판단에 따라 마련한 대책은 크게 두 가지다. 첫째, 백신 미접종 농가와 구제역 미신고 농가에 대한 행정제재를 강화하고, 둘째, 전국 축산농가와 도축장에 대한 일제소독 실시와 관련 차량의 이동 통제를 철저히 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방역체계만으로는 구제역 바이러스를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현재 개발된 백신의 경우도 소에는 효능이 높게 나타나지만 돼지에는 항체 형성률이 70%를 넘지 못하고 있다. 예방을 철저히 하더라도 30% 이상의 발병 위험에 노출된다는 말이다. 축산방역 전문가들은 가축 사육환경의 개선 없이는 구제역 발병 원인을 근본적으로 제거할 길은 없다고 충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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