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연말 이건희 삼성 회장에 대한 ‘원포인트 사면’의 실상이 5년 만에 일부 드러났다. <한겨레>가 정보공개 청구를 통해 입수한 법무부 사면심사위원회의 2009년 12월24일 회의록을 보면, 이 회장이 유례없는 기업인 1인 특별사면 혜택을 받는 과정에서 사면심사위는 사면의 합당성을 심사하는 본래 역할 대신 정부의 ‘거수기’ 노릇을 하는 데 그쳤다. 이러려면 사면심사위를 왜 만들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회의록에 드러난 사면심사위의 모습은 가관이다. 사면심사위는 법무부 장관의 특별사면 상신이 적정하게 이뤄질 수 있도록 심사·자문하는 기구다. 하지만 사면심사위원들은 되레 이 회장 사면의 명분과 이유를 앞다퉈 대는 데 급급했다. 예상되는 여론의 비판을 무마할 홍보대책도 대신 걱정해줬다. 마치 대언론 홍보전략회의 같았다.
회의에서 나온 사면 이유도 가당찮다. 법무부 쪽 위원은 이 회장이 아들에게 불법으로 경영권을 승계하는 과정에서 회사에 손해를 끼친 것을 “국익을 위해 열심히 하다가 문제가 된 것”으로, 법에 따라 이 회장을 처벌한 것을 “국익에 위배가 되는 그런 일”로 표현했다. 검사 출신인 법무부 간부가 불법 경영권 승계와 배임 따위 범죄행위를 옹호하고, 그에 대한 형사처벌을 잘못이라고 주장한 것이다. 실제 검찰은 법학 교수들이 삼성의 불법 경영권 승계를 고발한 2000년 이후에도 몇 년씩 미적대며 거듭 불기소 처분을 하거나 형식적인 봐주기 수사에 그쳤다. 검찰 대신 특별검사가 이 전 회장 등을 기소해 겨우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이라는 ‘재벌 맞춤형’ 판결이라도 받아냈는데, 법무부는 형 확정 4개월 만에 그조차 ‘봐주겠다’고 나선 것이다.
회의에서 심사위원들은 2018년 평창겨울올림픽 유치와 국제적인 기업경쟁 등 ‘국익’을 이 회장 사면의 명분으로 내놓았다. “국익을 위해 사면한다고 생각하면 편할 것 같다”고 말한 위원도 있었다. ‘법과 원칙’을 입버릇처럼 외쳐온 당시 이명박 정부가 모순되기 그지없는 무리한 단독사면을 강행한 것도 국익이라는 핑계였다.
비슷한 일은 지금도 벌어지고 있다. 최경환 경제부총리와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 등은 번갈아가며 경제 살리기를 위해 비리 기업인 가석방이 필요하다고 군불을 때고 있다. 그 대상이 주로 최태원 에스케이 회장(수감중)일 것이니, 사실상 ‘원포인트’이긴 마찬가지다. 가석방심사위원회도 사면심사위처럼 법무부 장관 소속이다. 또 거수기 노릇만 해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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