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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사설] 불신만 키우는 정부의 금연정책

등록 2015-01-07 18:42

‘꼼수 증세’ 논란 속에 대폭 인상된 담뱃값이 본격 적용되면서 웃지 못할 풍경이 펼쳐지고 있다. 연초에 금연을 결심하는 이들이 예년보다 늘어난 것은 바람직하지만, 여전히 담배를 끊지 못하는 흡연자들은 흡연량을 줄이거나 전자담배로 갈아타는 등 궁여지책을 찾고 있다. 흡연구역에서 담배를 구걸하는 사람도 눈에 띄고, 가난한 노인들이 소일하는 서울 탑골공원 등지에서나 찾아볼 수 있었던 ‘가치담배’ 파는 곳이 여기저기에 등장했다.

이런 와중에 정부가 뜬금없이 전자담배의 유해성에 관한 설명회를 열고, 전자담배를 금연보조제로 홍보·판매하는 행위를 단속하겠다고 밝혔다. 보건복지부가 6일 내놓은 전자담배 유해성 평가 자료는 3년 전 연구 결과인데다 당시 유통되던 전자담배용 니코틴 액상 가운데 상대적으로 농도가 높은 제품들을 대상으로 조사된 것이라고 한다. 정부 스스로 밝혔듯 전자담배 홍보·판매에 관한 실태조사도 해보지 않은 채 묵은 자료를 꺼내 서둘러 규제 방침부터 발표한 건 자연스럽지 않다. 담뱃값이 오른 뒤 전자담배 판매가 급증하는 시점에 이런 식의 발표가 나오니 뭔가 이상한 냄새가 난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시중에는 ‘담뱃값 인상으로 세수를 늘리려는 계획에 차질이 빚어지는 것을 막기 위한 조처가 아니냐’는 의구심까지 나오고 있다. 담뱃값 인상의 숨은 의도가 증세에 있었다는 광범위한 의심이 해소되지 않은 탓이라고 하겠다. 정부에서 별도의 언급이 없는데도 ‘가치담배’ 역시 단속 대상이 될 것이라는 성급한 전망도 나온다. 정부에 대한 불신이 이 지경까지 이른 데는 정부의 책임이 크다. 국민 건강을 걱정한다면 담뱃값을 올리는 것보다 손쉽고 효과적인 정책 수단인 담뱃갑 경고 그림부터 의무화했어야 한다. 논란 많은 담뱃값 인상은 서둘러 시행하면서 경고 그림 도입은 의지를 갖고 추진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으니 자꾸만 숨은 의도를 떠올리게 되는 것이다. 여기에 매끄럽지 않은 전자담배 규제 발표도 불신의 근거를 하나 더해준 꼴이다.

인터넷이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라오는 금연 관련 글들을 보면 ‘세금을 내기 싫어서’ ‘증세가 아니라는 정부에 화가 나서’ 담배를 끊는다는 내용이 많다. 금연이 조세저항 성격을 띠는 모양새다.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고, 흡연자들의 화를 돋워 금연을 결심하게 했으니 어쨌든 담뱃값 인상이 소기의 성과를 거뒀다고 해야 할 것인가. 못 미더운 정부가 빚어내는 세태가 서글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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