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새해 기자회견에서 남북관계에 대해 밝힌 내용은 실망스럽다. 남북관계를 진전시켜야 할 필요성이 커지는 상황임에도 발언 내용은 기존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했다. 정부는 이제라도 실효성 있는 방안을 제시하길 기대한다.
박 대통령이 현안인 대북전단 살포 문제와 관련해 ‘표현의 자유라는 기본권 문제와 주민 갈등 최소화 및 신변 위협 해소 필요성을 잘 조율해 지혜롭게 해 나가겠다’고 밝힌 것은 일정한 의미가 있다. 최근 다소 유연해진 정부 입장을 대통령이 직접 확인함으로써 북한이 반발할 여지를 줄였다고 할 수 있다. 박 대통령이 “앞으로 민간 차원의 지원과 협력을 통해 실질적인 대화와 협력의 통로를 만들어 나가겠다”고 한 것도 긍정적이다. 대북 인도적 지원과 경협의 확대를 뜻하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박 대통령은 북한에 뚜렷한 메시지를 전달할 좋은 기회를 살리지 못하고 동력이 떨어지는 원칙적 언급을 하는 데 그쳤다. 설을 전후로 한 이산가족 상봉과 광복절 70돌 기념 공동행사를 제안했으나 이는 남북관계를 풀 전략이라기보다 할 수 있는 행사의 예시에 가깝다. 게다가 핵심 쟁점인 5·24 조치 해제 문제에 대해 ‘그 얘기를 하려면 당국자 회담에 나와라’고 한 것은 공을 다시 북쪽에 떠넘기는 태도다. 정상회담에 대해서도 적극적 의지가 느껴지지 않는다.
박 대통령과 정부는 지금 남북관계 개선으로 통하는 문 앞에 서서 망설이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북한이 먼저 문 안쪽으로 들어가면 따라 들어가겠다는 태도다. 북한 또한 비슷하게 행동하는 점을 고려하면, 일단 대화가 시작되더라도 지난해처럼 장애물이 나타날 때마다 심하게 흔들릴 가능성이 크다. 이런 위험을 피해 남북관계를 안정적으로 발전시키려면 분명한 전략적 그림 아래 과감하게 정책수단을 취사선택해야 한다. 대통령을 중심으로 한 컨트롤타워의 의지가 굳건해야 함은 물론이다.
남북 당국은 모처럼 다가온 관계 개선 기회를 놓쳐선 안 된다. 특히 북한은 전제조건 없이 모든 문제를 대화로 풀어나가는 모습을 보이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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