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부·외교부 등 정부 4개 부처가 19일 ‘통일 준비’를 주제로 합동 업무보고를 하고 박근혜 대통령도 북한에 대해 이전보다 다소 유연한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남북관계를 실질적으로 진전시킬 수 있는 구체적 방안은 제시되지 않아 아쉽다.
박 대통령이 “어떤 형식의 (남북)대화를 하든 국민의 마음을 모아 협상을 해 나가고 북한이 호응해 올 수 있는 여건 마련에 노력해 달라”고 한 것은 전향적이다. 일방적으로 북쪽에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북쪽 처지를 고려한 ‘여건 마련’을 정부에 주문하고 있기 때문이다. 박 대통령이 이벤트성 사업보다는 “실질적으로 남북 주민들의 행복에 기여할 수 있는 교류협력의 질적 향상”을 강조한 것도 타당하다. 통일부가 “북한과 ‘함께’ 하는 통일준비”를 통일 추진 전략의 하나로 내세운 것도 옳은 방향이다.
하지만 박 대통령 발언과 정부 업무보고 내용은 실제 현안에는 눈감고 있어 현실성이 떨어진다. 금강산 관광 재개와 5·24 조치 해제 문제는 전혀 다루지 않았고 10·4 정상선언과 6·15 공동선언에 대해서도 언급이 없다. 한반도 비핵화 실현 방안과 관련해서도 북한의 결단을 촉구하는 의례적 언급에 그쳤다. 그러면서 산림녹화와 환경보전 등을 주요 남북 협력 사업으로 제시하니 공허할 수밖에 없다. 평화통일기반구축법 제정, 한반도 열차 시범운행, 남북겨레문화원 동시 개설 추진 등도 마찬가지다. ‘호혜적 남북 경협’ 항목에서도 기존의 개성공단과 나진-하산 물류사업 참여 외엔 새로운 내용이 없다.
지금 남쪽은 이산가족 문제 등 인도적 사안 해결을 앞세우는 반면 북쪽은 5·24 조치 해제와 한-미 군사훈련 중단 등을 주장한다. 이 가운데 한-미 훈련은 핵 문제와도 연관된 사안이어서 이후 과제로 넘기더라도 대북 경협에 대해서는 분명한 입장 정리가 요구된다. 북쪽 요구대로 5·24 조치를 한꺼번에 해제하는 게 어렵다면 금강산 관광부터 재개해 대화 통로를 넓힐 필요가 있다. 금강산 관광은 국제적인 대북 제재 이전에 중단된 것이어서 우리만 결단하면 문제를 풀 수 있다. 이후 고위급 접촉 등 대화가 이뤄지면 이산가족 문제의 해법과 경협 강화 등을 함께 논의할 수 있을 것이다.
통일 준비는 중요하다. 그러나 남북관계를 풀고 핵 문제를 개선할 방안도 없이 통일만을 얘기해서는 통일 문제를 정치적으로 활용한다는 의심을 사기 쉽다. 정부는 박 대통령이 말한 ‘여건 마련’에 빨리 내용을 채워 남북관계를 진전시키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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