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직 법관이 비리 혐의로 긴급체포된 뒤 구속되는 경악할 일이 벌어졌다. 2006년 조관행 전 서울고법 부장판사가 법조 브로커한테서 금품을 받은 혐의로 처벌된 이후 9년 만에 또 법관 비리 사건이 터졌다. 이번에 구속된 최아무개 수원지법 판사는 사채업자한테서 여러 차례에 걸쳐 수억원의 돈을 받은 혐의를 받고 있다. 그 행태와 액수도 놀랍지만, 사법부 역사에서 결코 일어나서는 안 될 일이 되풀이됐다는 데서 이번 사건은 더욱 충격적이다.
법관의 청렴 의무는 사법부의 존립 근거가 되는 재판의 공정성과 긴밀하게 연관돼 있다. 부패한 사법부의 판결에 어느 소송 당사자가 승복할 수 있겠는가. 법관윤리강령에서 법관은 청렴성을 의심받을 행동조차 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런데도 거액의 금품 수수 사건이 거듭 발생한 것은 사법부의 위기상황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대법원의 대응 태도는 사태의 심각성을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 대법원은 최 판사가 긴급체포된 뒤 “3회에 걸쳐 최 판사를 조사했으나 본인이 비위 혐의를 부인했고 강제수사권이 없는 한계로 인해 수사 결과를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고 해명했다. 지난해 4월 의혹이 제기된 뒤 아홉달 동안 사실상 방치·두둔해온 셈이다. 지금이라도 자체 조사 과정을 되짚어 은폐·무마 시도가 있었다면 책임을 묻는 등 강력한 자정 의지를 보여야 한다. 법관 임용 과정이나 내부 감시 시스템의 허점도 철저히 살펴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 비리를 저지른 법관의 신변 처리를 엄중히 하는 게 사법부의 권위를 지키는 관건이다. 막강한 권한을 갖고 그에 따른 고도의 도덕성이 요구되는 자리일수록 일탈행위를 엄벌해야만 그 기관의 위엄이 서는 법이다. 조관행 전 부장판사는 기소 전에 사표가 수리돼 자체 징계도 받지 않았고, 유죄가 확정된 뒤 사면복권까지 받았다. 이런 식이면 법관이라는 직분의 명예도 신뢰도 지킬 수 없다.
비위 법관에 대한 가장 강력한 처분은 파면이며 이는 국회가 탄핵을 의결하거나 재판에서 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받았을 때 가능하다. 재판을 통한 파면과 달리 탄핵은 국민의 이름으로 단죄를 한다는 의미가 있다. 일본에서는 의회에 설치된 탄핵재판소가 금품 수수나 아동 성매매 등의 비위를 저지른 법관을 6차례나 탄핵한 바 있다. 최 판사의 혐의가 분명한 사실로 확인되는 단계에서 국회가 나서 탄핵을 추진하는 것도 일벌백계의 전례를 세우는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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