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정부와 비교해 박근혜 정부의 눈에 띄는 특징 중 하나는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는 점이다. 청와대 비선실세 논란은 전면적인 인적 개편의 필요성을 절박하게 제기했지만, 이에 대한 대통령의 답은 “개각은 소폭으로 하고 청와대 비서 3인방도 바꾸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연말정산 파동이 소급 입법을 통한 일부 환급이란 전례없는 졸속 처방으로 이어졌는데도, 정부·여당 안에서 경제팀의 책임을 물으려는 움직임조차 없다. 정책이 조변석개해도 사람은 바꾸지 않는 게 박 대통령의 소신이고 철학인지 궁금하다.
이번 파동의 책임은 여야 정치권에도 없지 않지만, 그래도 가장 큰 책임은 ‘증세 없는 복지’를 줄곧 내세워온 박근혜 대통령과 경제팀을 이끄는 최경환 경제부총리에게 있다. 박 대통령은 대통령 후보 시절부터 “증세를 하지 않겠다”고 누누이 강조했고, 최 부총리 역시 국회에서 “지금은 증세를 고려할 때가 아니다”라고 거듭 밝혔다. 그래서 증세는 없는 걸로 알았는데 막상 연말정산을 해보니 세금 납부액이 늘어났고, 이것이 봉급생활자들의 분노를 증폭시킨 측면이 크다. 소득공제를 세액공제로 바꾼 게 소득 불균형을 완화하는 옳은 방향이라 해도 그 과정에서 세수가 늘어난다는 사실을 정부는 솔직하게 설명하지 않았다. 연말정산 파동이 벌어진 뒤에도 친박 핵심인 이정현 새누리당 최고위원은 여전히 “세목, 세율을 늘리거나 높인 게 아니기에 증세가 아니다”라는 해괴한 주장을 폈다.
결국 이번 파동은 소급 입법으로 귀결돼, 법적 안정성을 심각하게 훼손하고 정부 신뢰는 땅에 떨어져 버렸다. 누군가는 이에 대한 책임을 져야 마땅하다. “여론에 밀려서 어쩔 수 없이…”라는 말로 넘어가려 한다면, 앞으로 연금·노동개혁 등 쉽지 않은 현안에서 국민의 신뢰를 얻을 수가 없다. 최 부총리는 경제 분야에서 대통령의 가장 가까운 측근이다. 비선실세 논란에도 문고리 3인방을 그냥 두고 연말정산 파동에도 최 부총리를 유임시킨다면, 국민은 박 대통령을 ‘민심보다 측근을 먼저 생각하는 지도자’로 볼 것이다.
지금 국민은 현 정권이 남은 3년간 국정을 제대로 이끌어갈 수 있을지 심각한 의문을 던지고 있다. 30%대로 떨어진 국정 지지율은 그런 인식의 반영이다. 국정운영 능력에 대한 불신을 극복하는 첫 단추는 인사 쇄신이다. 최 부총리까지 포함하는 큰 폭의 내각 및 청와대 개편을 하지 않으면 국민 기대에 부응하기 어렵다.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