쇄신은 없었다. 소통과 화합도 없었다. 폐쇄적 국정운영에 대한 집착도 여전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23일 내놓은 내각과 청와대 개편은 한마디로 기대 이하였다. 과연 이런 수준의 인적 개편으로 악화된 민심을 되돌릴 수 있으리라 생각하는지, 그 안이한 상황인식이 놀라울 뿐이다.
무엇보다 김기춘 비서실장과 문고리 권력 3인방은 그대로 건재했다. 이들의 경질 여부는 청와대 인적 개편의 핵심이자 ‘대통령의 변화’ 여부를 알려줄 시금석이었다. 하지만 김 실장은 ‘당분간’이라는 꼬리표가 붙긴 했지만 자리를 지켰고, 3인방 역시 업무만 다소 조정됐을 뿐 청와대에 남았다. 여론이 아무리 들끓어도 굴복하지 않겠다는 박 대통령의 오기마저 느껴진다.
이완구 새누리당 원내대표의 총리 후보 지명에서도 신선한 감동은 찾아보기 어렵다. 정치인 출신인 그가 총리가 되면 그동안 꽉 막혔던 정부와 국회, 정치권 간의 의사소통이 다소 원활해지리라는 기대 섞인 전망도 나온다. 하지만 ‘친박 총리’ 발탁은 내각의 친위체제를 더욱 확고히 한다는 의미를 지닐 뿐 탕평과 화합 등 총리 후보 지명에서 기대되는 메시지와는 거리가 멀다. 이 총리 후보자는 “대통령에게 쓴소리와 직언을 하는 총리가 되겠다”고 다짐했다. 그동안에도 이런 다짐을 했던 총리들이 수없이 많았으나 하나같이 헛된 약속으로 끝났다. 더욱이 이 총리 후보자가 지난해 12월 청와대 오찬에서 박 대통령을 “각하”라고까지 부르며 굽실거렸던 점을 떠올리면 더 믿음이 가지 않는다.
박 대통령이 소통과 화합이 안중에 없다는 것은 고 노무현 대통령 수사 검사 출신이었던 우병우 민정비서관을 민정수석으로 승진 발령한 데서도 드러난다. 게다가 김기춘 비서실장, 검찰총장 출신의 신임 이명재 민정특보까지 합하면 청와대 안의 ‘검찰 상전’ 숫자는 더욱 늘어났다. 앞으로 검찰에 대한 청와대의 장악력이 더욱 강화되리라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청와대가 학계와 언론계 등에서 대거 사람들을 발탁해 특보 자리에 앉힌 것도 고개를 갸웃거리게 하는 대목이 많다. 역대 정권들에서도 걸핏하면 청와대 특보를 두었으나 역할이 불분명하고 수석비서관들과의 관계도 어정쩡해서 별다른 성과가 없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번에 임명된 특보들은 비상임으로 기존의 업무를 겸직할 예정이라는 점이다. 대학교수들은 그렇다 치고 사회문화특보로 임명된 김성우 에스비에스(SBS) 기획본부장의 경우는 참으로 상식에 어긋난다. 그가 뒤늦게 사표를 내기로 했다고 하니 그나마 다행이지만, 청와대가 애초부터 언론사를 청와대의 하부기관 정도로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
지금 대한민국은 총체적 난국에 처해 있다. 박 대통령의 지지율이 역대 최저치를 기록하고 있는 것도 이런 상황에 대한 국민의 불안과 절망감의 표시다. 이런 난국을 극복할 유일한 출발점은 과감한 인적 쇄신이었으나 박 대통령은 이를 외면했다. 그 결과는 고스란히 박 대통령이 짊어질 수밖에 없다.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