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대·공주대·방송통신대·한국체육대 등 국립대들이 자율적으로 선정한 총장 후보를 교육부가 거부함에 따라 해당 대학들의 총장 공석 사태가 적게는 4개월에서 많게는 22개월까지 장기화하고 있다. 법원에서 교육부의 처분은 위법이라는 판결이 잇따라 나와도 교육부는 꿈쩍 않는다. 학사 운영의 차질은 둘째 치고, 헌법과 법률이 보장하는 대학의 자율성이 훼손됐다는 점에서 묵과할 수 없는 사태다.
무엇보다 해괴한 것은 교육부가 총장 후보들의 임용제청을 거부하면서 그 이유에 대해 한마디의 설명도 내놓지 않는다는 점이다. 대학 구성원들이 적법한 절차를 통해 선정한 총장 후보를 거부하려면 당연히 타당한 근거를 대야 한다. 그러나 교육부는 ‘개인의 명예와 관련된 것이라 공개할 수 없다’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 총장 후보로 선정된 이들은 공적인 인물인 만큼 부적격 사유가 있다면 공개하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 구체적 사유도 없이 부적격자로 내몰린 당사자들이 오히려 억울해하며 이유를 밝히라고 요구하는 상황이다.
법원도 이 점을 들어 교육부에 패소 판결을 내렸다. 공주대 총장 후보로 선정된 김현규 교수가 낸 소송에서 서울고법은 21일 “교육부가 임용제청 거부 처분을 하면서 그 근거와 사유를 명시하지 않아 국가의 적법한 행정 절차를 위반했다”고 판결했다. 22일에도 방송통신대 총장 후보 류수노 교수가 낸 소송에서 같은 취지의 판결이 나왔다.
하지만 황우여 교육부 장관은 이후 언론 인터뷰에서 대법원까지 소송을 이어가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비록 하급심이지만 법원에서 일관된 판결이 나오고 있는데도 이를 무시한 채 시간을 끌어보겠다는 심산으로 보인다. 황 장관은 지난해 10월 국정감사에서 총장 후보들에게 거부 사유를 통보하겠다고 했던 말도 지키지 않고 있다.
교육부의 이런 비정상적인 태도는 뭔가 말 못할 사정이 있을 것이라는 세간의 의혹에 힘을 실어준다. 바로 청와대 개입설이다. 총장 후보들이 청와대 입맛에 맞지 않자 별다른 이유도 대지 못한 채 퇴짜를 놓고 있다는 것이다. 청와대 관계자가 총장 후보들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과거 시국선언 참여 여부 등 인사검증을 했다는 증언도 나온 상태다. 상식적으로 봐도, 청와대가 뒷배를 봐주지 않고서는 교육부가 저토록 후안무치한 행태를 보이지는 못할 것이다. 정권과 코드가 맞는 인물만 국립대 총장에 앉히려 한다면 이는 민주화 이전의 ‘어용 총장’을 연상케 하는 퇴행이자, 대학의 비판적 지식인들을 길들이려는 반지성적 폭거다.
이번 사태는 비단 대학만의 문제도 아니다. 현 정부의 억지스럽고 비겁한 국정 운영 방식을 고스란히 드러낼 뿐만 아니라, 사회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민주주의 역행 현상의 심각성을 일깨워주는 사례이기 때문이다. 어떤 속사정이 숨어 있는지, 누구의 책임 아래 이뤄진 일인지 철저히 밝혀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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