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시 고위 간부들이 지난 23일 이용관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을 만나 사퇴를 권고했다고 한다. 당장 지난해 부산영화제의 <다이빙벨> 검열 논란을 떠올리게 한다. 세월호 참사를 다룬 이 다큐멘터리가 초청 상영작으로 선정되자 서병수 부산시장이 “정치적 중립을 훼손할 수 있는 작품” 운운하며 상영 중단 압력을 넣었지만, 부산영화제 쪽은 “예정대로 상영하는 것이 정치적 중립을 지키는 것”이라는 원칙적 태도를 유지했다. 그로부터 넉 달 뒤 뚜렷한 이유도 없이 이 위원장에게 사퇴 압력이 들어갔으니 지난번 일에 대한 보복성 조처가 아니냐는 의혹이 일기에 충분하다.
부산시의 궁색한 태도는 이런 의혹을 뒷받침한다. 부산영화제가 아시아를 대표하는 영화제로 성장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해왔고 공식 임기도 1년이나 남은 이 위원장을 갑작스레 교체하려면 특별한 이유가 있어야 할 터다. 그러나 부산시는 ‘영화제 20주년을 계기로 새로운 도약을 위한 영화제 패러다임과 비전 제시, 조직과 인적 쇄신이 필요하다’는 어정쩡한 답변만 내놓고 있다. 또 부산시는 지난해 12월 부산영화제를 대상으로 실시한 지도점검에서 19가지 지적사항이 나왔다고 뒤늦게 밝혔다. 지도점검의 배경도 의문이지만, 정말로 중대한 문제점이 발견됐다면 왜 공식적으로 책임을 묻지 않는지 궁금하다. 슬그머니 사퇴 압력용으로나 활용하려는 듯한 태도는 당당하지 못하다.
특히 부산시의 지적사항 가운데는 초청 상영작 선정 절차가 미비하다는 내용이 들어 있는 모양인데, 이는 <다이빙벨> 논란의 앙금이 직접적으로 느껴지는 대목이다. 이에 대해 부산영화제 쪽은 상영작 선정에서 프로그래머의 영화관과 안목이 무엇보다 존중돼야 하고 세계적인 영화제는 모두 그렇게 한다고 설명한다. 부산시는 예술의 영역에 기어이 관료주의의 껍질을 씌우고 싶어 안달이 난 듯하다.
부산시가 지난해 <다이빙벨> 상영을 막으려 했던 것부터가 부산영화제의 품격을 크게 훼손했다.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수단 중에서도 최악으로 꼽히는 ‘사전 검열’을 시도했기 때문이다. 이를 거부한 집행위를 또다시 보복성 조처로 흔들어댄다면, 부산은 물론 우리나라의 자랑거리가 된 부산영화제를 이류, 삼류 영화제로 떨어뜨리는 행위가 될 것이다. 부산영화제가 올해 20년을 맞아 진정으로 새롭게 도약하길 원한다면 부산시는 예산 지원을 빌미로 한 치졸한 간섭을 중단하고, 예술의 자유를 품어 안는 든든한 후원자 역할에 충실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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