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게 힘들다는 말을 너나없이 입에 달고 사는 세상이지만, 정말로 하루하루 살아가는 게 고통스러워 죽음을 선택하는 이들의 참담함이란 말로 표현하기 힘들다. 대구에서 지적장애 1급인 30대 언니를 돌보며 살아오던 28살 류아무개씨가 24일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어릴 적 부모를 잃은 류씨는 마트 아르바이트 등 비정규 일자리를 전전하며 장애인 시설에 있는 언니를 돌보다, ‘함께 살고 싶다’는 언니를 13일 자신의 월세방으로 데려왔다고 한다. 유서에 적힌 “할 만큼 했는데 지쳐서 그런다. 내가 죽더라도 언니는 좋은 시설 보호소에 보내달라”는 말이 가슴을 친다.
류씨 자매의 비극은 여러모로 지난해 서울 송파구 ‘세 모녀’ 사건과 닮았다. 보증금 500만원에 월세 36만원짜리 원룸에서 살던 류씨는 두 달치 월세가 밀려 있었다고 한다. 안정적인 직업도 갖지 못한 채 장애인 언니의 뒷바라지까지 홀로 감당해야 했으니 심신의 고통이 얼마나 컸을지 짐작할 만하다. 그러면서도 마지막 순간에 “장기는 다 기증하고 빌라 보증금도 사회에 환원하길 바란다”고 적었다. 힘든 삶 속에서도 자존감과 품위를 잃지 않으려 애썼을 류씨에게 우리 사회는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했다. 류씨는 20일에도 자살을 시도하다 구조됐다는데, 그런 일이 있고도 관계 당국의 손길이 미치지 않았다는 것은 위기 가정 발굴체계가 여전히 고장 나 있음을 보여준다.
이번 사건은 비정규직, 장애인 복지, 사회안전망 등 여러 문제가 얽혀서 빚어낸 비극이다. 어느 한 가지라도 확실히 개선돼 류씨의 고통을 덜어줬다면 그의 선택은 달라질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 반대로 가고 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복지 욕구 파악을 위해 매년 실시하는 한국복지패널 조사를 보면, 2013년 저소득층이었다가 2014년 중산층 이상으로 계층이동한 사람의 비율은 22.6%로 역대 최저다. 이 비율은 조사를 시작한 2006년 이래 10%포인트나 떨어졌다. 또 2013년 임시일용직이었던 사람 가운데 83%는 2014년에도 여전히 임시일용직일 정도로 고용 형태도 고착화했다. 장애인의 일상생활을 도와주는 사람은 저소득층의 경우 형제자매·손자녀가, 일반 가구는 유료 가정봉사원·조부모가 상대적으로 많았다. 그나마 이런 도움이 부족하다는 응답이 저소득 가구의 44.07%에 달했다. 정부는 ‘증세 없는 복지’라는 헛구호만 외칠 게 아니라 고통받는 국민의 실상부터 똑바로 바라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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