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 취임 직후부터 국정과제로 추진해온 건강보험료(건보료) 부과체계 개편을 정부가 공식 발표 하루 전인 28일 돌연 백지화했다. 담뱃값 인상과 연말정산 파동을 겪으며 박 대통령 지지율이 급락한 상황에서 건보료 개편으로 부담이 늘어날 일부 계층의 추가 반발이 무서워 이런 졸속 결정을 내렸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우왕좌왕하는 아마추어 국정의 극치다.
연말정산 파동은 애초 정책 방향은 옳았지만 이렇다 할 설명과 설득 과정이 없었던 데서 비롯됐다. ‘증세 없는 복지’를 강변하며 1조원 가까운 세금을 거위털 뽑듯 거둬 가려다 국민적 분노를 산 것이다. 그렇다면 정부가 얻어야 할 교훈은 정책의 필요성과 효과에 대해 국민과 솔직하고 충분한 소통을 해야 한다는 점이다. 이런 접근법이라면 건보료 개편은 얼마든지 성공할 수 있었다고 본다.
우선 건보료 개편이 시급하다는 데는 광범위한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 은퇴·실직·저소득 지역가입자는 과다하게 내는 반면 소득이 많아도 자녀·배우자의 피부양자로 등록한 이들은 무임승차하는 등 합리성과 형평성이 깨져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당시 김종대 국민건강보험공단 이사장이 ‘송파 세 모녀는 5만원을 내야 했지만 나는 퇴직하면 수천만원 연금소득이 생겨도 아내의 피부양자로 보험료가 0원이 된다’고 정곡을 찌른 바 있다.
더구나 건보료 개편은 보험재정 중립의 원칙에 따라 수지 균형을 맞춰 설계되기 때문에 연말정산 개편처럼 전체적으로 ‘증액’되지도 않는다. 기존에 특혜를 보던 일부 계층이 부담을 현실화하는 대신 국민의 80%는 부담을 덜게 된다. 말 그대로 민생정책인 것이다. 물론 고소득 계층에서 불만이 나올 수 있겠지만, 이야말로 정부가 설득해야 할 부분이다. 어차피 최종 개편안은 4~5월에 채택할 예정이었다니, 시간적 여유도 있었다.
그런데도 성급히 백지화 카드를 꺼낸 것은 지난 과오에서 제대로 교훈을 얻지 못하고 정략적 계산에만 민감해진 결과라고 볼 수밖에 없다. 대통령 지지율 하락이 그 배경이라는 게 뻔한데도, 청와대는 ‘전적으로 보건복지부 장관이 판단한 것’이라며 떠넘기기에 급급하다. 아무런 국정 철학도 책임감도 없는 이 정부에 더 이상 기대할 게 있겠느냐는 허탈함만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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