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권 여당인 새누리당에서 증세 논의를 더는 피할 수 없게 됐다는 발언이 잇따르고 있다. 그것도 현직 고위 당직자와 차기 당직 후보자의 얘기여서 무게가 가볍지 않다. 연말정산 파동을 거치며 ‘증세 없는 복지’가 실현 불가능한 공약이라는 사실 등이 확인됐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여당의 이런 달라진 움직임을 환영하며 실질적인 논의의 장으로 이어지길 기대한다.
나성린 새누리당 정책위원회 수석부의장은 29일 국회에서 열린 한 토론회에서 “‘박근혜식 증세’가 한계에 달했다. 복지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어떻게 증세를 할지 본격적으로 논의할 때가 됐다”고 말했다. 나 수석부의장은 “탈세를 줄이고 비과세·감면을 해보자는 것이 박근혜식 증세”로 이번에 그것만으로 안 된다는 게 드러났다며, 법인세 인상 가능성도 언급했다. 주호영 원내대표 대행도 30일 자신이 증세를 지지하는지 밝히지는 않았지만 관련 논의를 할 때가 됐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또한 원내대표 후보자의 한 사람인 유승민 의원은 “증세 없는 복지는 현실적으로 맞지 않다”며 증세 논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에 따라 원내대표 경선에서 복지와 증세가 중요한 쟁점의 하나가 될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며칠 새 새누리당의 분위기가 크게 바뀌었음을 일러준다. 연말정산 파동이 시작될 때만 해도 박 대통령의 ‘증세 불가’ 방침에 눌려 증세 논의의 불가피함을 들먹이는 고위 당직자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그런데 박 대통령 지지율이 30% 밑으로 떨어지는 등 국민들의 반발 여론이 커지자 이렇게 된 것으로 보인다. 어쨌든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현행 조세체계가 급증하는 재정수요를 감당하고 심각한 불평등 현상을 해소하기에 역부족이라는 점은 새누리당도 잘 알 것이다. 지난해까지 3년간 세수 부족을 빚은 것에서 보듯 재정건전성에도 문제가 없지 않다. 반면, 조세부담률은 올해 17.5%로 경제협력개발기구 평균치보다 낮을 것으로 전망된다. 증세 여력이 있다는 얘기다.
그런 만큼 새누리당이 논의의 장을 만드는 데 적극 나서야 한다. 고위 당직자들의 발언이 국민들의 불만을 누그러뜨리기 위한 제스처가 아님을 진정성 있는 행동으로 보여줘야 할 때다. 야당인 새정치민주연합이 증세 방침을 내세우고 있어서 새누리당이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논의를 진전시키고 의미있는 결과를 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 수석부의장이 제안한 국민대타협위원회를 꾸려도 좋고 국회가 직접 특위 등을 만들어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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