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당 원내대표 선거에서 ‘비주류’ 유승민 의원이 ‘친박’으로 꼽히는 이주영 의원을 큰 표차로 누르고 당선됐다. 지난해 7월 김무성 의원이 친박 핵심인 서청원 의원을 꺾고 당대표가 된 데 이어 이번 유 의원의 원내대표 당선으로, 새누리당 안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영향력은 큰 타격을 받게 됐다. 집권 2년을 갓 넘긴 시점에 이렇게 여당에서 주류가 급격히 몰락하는 양상이 나타나는 건 매우 이례적이다.
여당 의원들이 유승민 의원을 새 원내대표로 선택한 이유는 여럿 있겠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건 역시 ‘당이 제 목소리를 내야 내년 총선에서 살 수 있다’는 절박감일 것이다. 이는 박 대통령에게, 집권 이후 여당을 어떻게 대해 왔는지 반성하고 당-청 관계에서 근본적 변화를 모색하라는 요구를 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대통령이 당 총재를 겸했던 권위주의 시대와 달리, 대통령과 여당의 원내대표는 상하관계가 아니다.
그런데도 박 대통령은 지난 2년간 당을 청와대의 거수기 정도로만 취급해, 주요 정책을 실질적으로 상의하거나 법안 통과를 위해 대등하게 협력해오지 않았다. 박 대통령의 고집과 독선이 여당과의 관계에서만 나타나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국정의 한 축인 여당조차 대통령과 소통하지 못하는 현실이 지금 우리 정치의 현주소라 할 수 있다. 이런 어긋난 관계를 바로잡고 주요 정책 추진 및 입법 과정에서 당이 주도권을 행사하라는 요구가 지금 시기에 비주류 원내대표의 탄생으로 나타난 것이다. 이제 ‘친박’이란 세력은 정치권에서 사실상 힘을 잃었다. 그런 만큼 박 대통령은 이번 원내대표 경선에 담긴 뜻을 잘 읽고, 겸허해질 필요가 있다. 국회를 제압해서라도 자신의 의도대로 정책을 밀어붙이겠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새 원내대표를 뽑은 여당은 물론이고 곧 새 당대표를 뽑는 제1야당과 자주 대화하고 설득하면서 국정을 이끌어가야 한다.
유승민 새 원내대표는 경선 과정에서 약속했듯이, 대통령보다 국민을 먼저 생각해야 한다. 그래야 당이 살고 대통령도 산다. 집권 여당이 청와대 눈치만 보며 입을 다문 결과가 지금 나타나는 국정 난맥과 민심이반이다. 특히 유 원내대표는 박 대통령의 ‘증세 없는 복지’를 허구라고 비판하며 “단계적인 증세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고 말해왔다. 당리당략이 아닌 진정 국민을 중심에 두고 복지와 재정 문제에 접근해서 법인세 인상 등을 추진하는 방안을 야당과 협의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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