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영화 문화·산업의 세계적인 명성을 깎아내리려고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작당을 한 모양이다. 부산시가 부산국제영화제를 정치적으로 통제하려는 치졸한 행태를 보인 데 이어, 영화진흥위원회(영진위)가 각종 영화제에 대한 사전 심의를 추진해 영화계의 반발을 사고 있다. ‘영화 및 비디오물의 진흥에 관한 법률’(영비법)은 영진위가 추천한 영화제의 상영작에 대해 사전 상영등급 심의를 면제하도록 예외규정을 두고 있는데, 이 규정을 고치겠다는 것이다.
속내는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앞서 영진위는 지난달 독립영화상영관 인디스페이스의 기획전 ‘2015 으랏차차 독립영화’에 대해 상영등급 심의 면제를 위한 추천을 취소했다. 이에 따라 제한상영가 등급 판정을 받았던 <자가당착: 시대정신과 현실참여> 등 3편의 영화가 상영되지 못했다. <자가당착>은 박근혜 대통령을 풍자한 영화다. 영진위가 상영등급 심의 면제 규정을 고치겠다고 나선 건 이런 식의 간섭을 아예 제도화하겠다는 선언이나 다름없다. 부산시가 지난해 부산영화제에서 세월호 참사를 다룬 다큐멘터리 <다이빙벨>을 상영하지 못하도록 압력을 넣은 것과 마찬가지로, 정권의 입맛에 맞지 않는 영화를 영화제에 올리지 못하게 하겠다는 것으로밖에 볼 수 없다.
그동안 영화제에 대해 등급 심의 예외규정을 뒀던 것은 다 이유가 있다. 영화제는 전문 영화인들과 눈 밝은 관객들이 한자리에 모여 영화의 새로운 가능성과 미래의 영화 흐름을 가늠하는 자리다. 개방적이고 진취적인 영화 정신의 향연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 사전 심의라는 올가미가 씌워지면 영화제 자체의 위상이 크게 훼손될뿐더러 영화계 전반의 예술적 상상력도 위축시키게 된다. 정부가 강조하는 ‘영화의 창조산업 선도 역할’도 기대할 수 없게 될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싱크탱크 구실을 해온 국가미래연구원 출신인 김세훈 영진위원장이 취임한 직후 이런 일이 벌어지니 더욱 볼썽사납다. 부산영화제 논란을 일으킨 서병수 부산시장도 대표적인 ‘친박’으로 꼽히는 인물이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순수문학 작품만 우수도서로 선정하겠다’고 밝혀 물의를 빚고 있는 것까지 포함하면, 현 정권이 조직적으로 문화·예술의 자유를 공격하고 있다는 의심마저 지울 수 없다. 영화를 비롯한 문화·예술에 대한 불순한 개입은 정권의 이익을 위해선 어떤 중요한 가치도 내팽개치겠다는 것이나 다름없다. 영진위가 2일 예외규정 개정을 일단 보류하겠다고 밝혔다지만, 보류가 아닌 철회가 마땅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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