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3일 “골프 활성화 대책을 만들라”고 지시하자, 정부 부처들이 기다렸다는 듯 골프 세금 감면 방안과 공무원 골프 허용 등 다양한 조처를 검토하고 나섰다. 비판 여론을 의식한 듯 최경환 경제부총리가 황급히 “현재로서는 (골프 관련 세율 인하를) 검토하고 있지 않다”고 말했지만 그 여파는 간단치 않다. 대통령이 활성화 대책을 지시한 이상 어떤 식으로든 골프 산업에 혜택을 주는 정부 차원의 조처가 뒤따를 건 분명하다. 지금 시점에 골프장부터 살리겠다고 나서는 대통령을 보면서, 과연 상황과 정책 우선순위에 대한 적절한 판단능력을 갖추고 있는지 심각한 의문이 든다.
지금 민심은 정부에 대한 불만으로 들끓고 있다. 봉급생활자나 서민으로부터 세금을 더 거두는 사실상의 ‘증세’를 하면서 말로는 ‘증세 없는 복지’를 외치는 정부 태도가 그런 불만에 기름을 끼얹었다. 그러니 여당 안에서도 대통령을 향해 “더 이상 국민을 속이지 말라”는 날 선 비판이 터져 나오는 것이다. 여야 모두 복지와 증세 논의를 본격화해야 한다고 말하는 시점에, 이에 대한 진지한 접근을 할 생각은 하지 않고 한가하게 골프장 세금이나 깎아줄 발상을 하는 대통령을 보면서 국민은 무슨 생각을 하겠는가. 그러다가 재정적자가 심해지면 또 봉급생활자나 서민들에게 전가할 텐가. 현시점에서 박 대통령에게 가장 시급한 과제는 ‘증세 없는 복지’라는 대선 공약의 허구를 솔직히 인정하고, 국회와 함께 복지와 증세 문제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는 일에 힘을 쏟는 것이다.
골프가 과거에 비해 대중화됐고 개별소비세 등이 너무 높아 조정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 전혀 일리 없는 건 아니다. 하지만 골프뿐 아니라 모든 산업이 얼어붙어 있고 수많은 자영업자와 직장인들이 폐업 또는 퇴직의 칼날 앞에 서 있는 게 이 겨울 우리 사회의 모습이다. 이런 시기에 상대적으로 고소득층이 즐기는 골프부터 살리자는 대통령은 대체 누구의 대통령일까 하는 생각을 지우기 힘들다.
더 한심한 것은, 대통령 한마디에 맞장구만 치는 장관들의 모습이다. 최 부총리는 “해외에 가서 (골프를) 너무 많이 한다”고 했고, 김종덕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공무원 골프 금지라는) 잘못된 메시지가 전달돼서…”라고 맞장구를 쳤다. 대통령 발언이 가져올 정치적 파장은 생각하지 않고 비위만 맞추려 아부하는 게 현 정부 고위공무원들의 민낯이다. 이런데도 인적 쇄신을 거부하는 건 도대체 무슨 배짱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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