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증세를 둘러싼 담론이 정치권에서 봇물처럼 쏟아지고 있다. 복지구조 조정론, 증세 불가피론, 부자증세론 등 새누리당 안에서도 엇갈린 해법이 백출하고, 새정치민주연합 쪽에서도 부자증세를 전제로 한 선별적 복지 수용론이 제기되기에 이르렀다. 가히 백가쟁명 백화제방의 시대라 할 만하다.
이런 속에서도 다수가 공감대를 이루는 대목은 분명히 나타나고 있다. 우선 ‘증세 없는 복지의 허구성’이다. 청와대와 새누리당 친박 세력 쪽에서는 아직도 현실을 인정하지 않으려 하지만 복지재정 수요와 재원조달 능력 간에 격차가 계속 확대되는 현상은 이미 움직일 수 없는 현실이다. 지하경제 양성화, 지출구조 조정 등 박근혜 대통령의 복지재원 조달 계획이 제대로 실행에 옮겨졌는지와는 별개로 이제 ‘꼼수 증세’ 따위로는 난관을 돌파할 수 없음이 분명해졌다.
일각에서 주장하는 복지 축소에 대해서는 새누리당 안에서도 ‘바람직하지도, 가능하지도 않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에 비해 한국의 복지 수준이 현저히 낮은데다, 우리의 지향점이 ‘성숙한 복지국가’가 돼야 한다는 데는 이견을 달기 어렵기 때문이다. 다만, 현재의 복지 우선순위나 복지 전달 체계의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점은 야당도 점차 수긍하는 분위기다. 결국 이번 기회에 복지 체계를 더욱 정교하게 다듬고 증세를 포함한 현실적인 재원조달 대책을 마련하는 일은 피할 수 없는 과제로 등장했다.
문제는 어떤 방식, 어떤 경로를 통해 이런 백가쟁명식 논의를 하나로 수렴하는가다. 이를 위해서는 국회가 중심이 돼서 ‘복지·조세 대위원회’ 같은 기구를 만드는 것도 하나의 좋은 방안이라고 본다. 현실적으로도 청와대와 정부 경제부처 등은 이 사안을 다룰 동력을 이미 잃었다. 또 지금의 여권 내부의 엇박자 양상 등을 볼 때 각 정당이 ‘통일된 당론’을 마련해 테이블에 마주앉기를 마냥 기다릴 수도 없는 형편이다.
게다가 복지와 세금은 특성상 국민적 합의가 절실히 요청되는 사안이다. 당장 세금을 올리는 문제만 해도 국민의 이해를 구하는 문제가 결코 녹록지 않다. 단순히 정치권만의 논의 방식이 아니라 전문가 등을 포함한 광범위한 공론의 장 마련→사회적 대토론→국민적 합의→제도화의 단계를 밟아 나가는 방식이 좀더 유효할 수 있다. 마침 새정치민주연합 쪽이 ‘범국민조세개혁특별위원회’ 설치를 제안했고, 새누리당도 이에 긍정적 반응을 보인 것을 고려하면, 특위의 활동 범위와 참가 규모를 더욱 확장한 범국민적 기구를 얼마든지 만들 수 있다고 본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여와 야는 물론 여당 내 각 세력도 ‘정치 게임’의 논리에서 벗어나야 한다. ‘복지와 세금’은 현재뿐 아니라 우리의 미래를 결정하는 중요한 화두다. 정치권이 말만 앞세우다가 흐지부지하지 말고 이번 기회에 복지와 증세 문제에 확실히 마침표를 찍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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