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오피니언 사설

[사설] 정치검찰의 야만성 재확인한 ‘대화록 폐기 무죄’

등록 2015-02-06 18:36

2007년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초본을 폐기한 혐의로 기소된 참여정부 청와대의 백종천 전 외교안보실장과 조명균 전 안보정책비서관에게 무죄가 선고됐다. 서울중앙지법은 6일 대화록 초본은 대통령기록물이 아니고 폐기하는 게 당연하다며 이렇게 판결했다.

법원은 결재권자인 노무현 전 대통령이 대화록 초본 파일을 열어본 뒤 내용을 승인하지 않고 ‘재검토’하라고 명시적으로 지시했기 때문에 대통령의 결재가 이뤄지지 않았으며, 따라서 대통령기록물로 생산됐다고 볼 수 없다고 밝혔다. 애초 대통령기록물관리법 위반이 아니라는 얘기다. 법원은 또 완성본 이전의 초본이 따로 사용될 이유가 없고 그냥 두면 자칫 혼동될 염려도 있으므로 폐기하는 것이 옳다고 했다. 폐기 대상이니 공용전자기록 손상 혐의도 무죄다. 법리나 일반의 상식에 어긋나지 않는 당연한 판단이다. 그런데도 왜 검찰이 이렇게나 억지스런 혐의를 붙여 기소를 강행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검찰은 공소장에서 “서해 북방한계선(NLL) 논란을 의식한 노 전 대통령 지시로 대화록 초본을 파기했다”고 주장했다. 2013년 11월 수사결과 발표 때도 노 전 대통령이 정상회담 당시의 ‘엔엘엘 포기 발언’을 숨기기 위해 삭제 지시를 한 것처럼 말했다. 하지만 검찰의 주장은 모두 사실이 아니었다. 엔엘엘 포기 발언이 없었다는 사실은 공개된 대화록 전문을 통해 확인됐다. 엔엘엘 공세를 주도했던 새누리당 의원조차 2014년 5월 “노 전 대통령은 포기라는 말을 한 번도 하지 않았다”고 시인했다. 초본을 삭제했느니 파기했느니 따질 이유도 없었다. 당시 검찰의 수사발표문도 대화록 초본과 수정본 전문 사이에 차이가 거의 없다고 밝히고 있다. 그럼에도 검찰은 “초본도 대통령기록물”이라며 기어코 재판까지 끌고 왔다. 이번 판결은 그런 주장이 말도 안 되는 억지였음을 확인한 것이다.

왜 이런 비상식적인 광분이 벌어졌는지는 당시 상황에서 짐작할 수 있다. ‘엔엘엘 포기’ 논란은 2012년 대선 당시 새누리당의 선거용 공세였다. 국정원의 대선개입 댓글 사건으로 떠들썩하던 2013년 6월 새누리당과 국정원이 이를 다시 들고나왔다. 국면 전환 시도로 의심할 만했다. 검찰은 새누리당의 고발 뒤, 발 빠르게 수사에 나서 결국 두 사람을 기소했다. 정쟁의 하수인으로 동원돼 무죄 따위 결과는 아랑곳하지 않고 막무가내로 칼을 휘두른 꼴이다. 이런 야만적인 국가폭력에 대해선 반드시 책임을 물어야 한다.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오피니언 많이 보는 기사

윤석열이 연 파시즘의 문, 어떻게 할 것인가? [신진욱의 시선] 1.

윤석열이 연 파시즘의 문, 어떻게 할 것인가? [신진욱의 시선]

“공부 많이 헌 것들이 도둑놈 되드라” [이광이 잡념잡상] 2.

“공부 많이 헌 것들이 도둑놈 되드라” [이광이 잡념잡상]

‘단전·단수 쪽지’는 이상민이 봤는데, 소방청장은 어떻게 알았나? 3.

‘단전·단수 쪽지’는 이상민이 봤는데, 소방청장은 어떻게 알았나?

극우 포퓰리즘이 몰려온다 [홍성수 칼럼] 4.

극우 포퓰리즘이 몰려온다 [홍성수 칼럼]

‘영혼의 눈’이 썩으면 뇌도 썩는다 5.

‘영혼의 눈’이 썩으면 뇌도 썩는다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