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24일 내놓은 정치관계법 개정의견을 보면, 선거제도 개편부터 정당의 공직후보자 선출 방식, 지구당 부활 등에 관해 폭넓은 제안이 망라되어 있다. 하지만 선관위 개정의견을 바라보는 정치권의 시각은 그리 곱지 않은 듯하다. 선거의 공정한 관리를 임무로 하는 선관위가 국회와 정당 몫인 선거제도 개편이나 공직후보자 선출 방식에까지 개입해 훈수를 두는 게 과연 옳으냐는 지적은 일견 일리가 있어 보인다. 또 개정의견에 담긴 사안에 따라 찬반이 첨예하게 갈릴 수도 있다.
그러나 이렇게라도 선관위가 의견을 내지 않으면 국회나 정당에서 기득권을 잃을 수 있는 관련법의 개정과 제도 개선을 생각조차 하지 않으려 하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국회는 선관위 의견 제출을 계기로 정치개혁 작업에 박차를 가하기 바란다.
선관위 의견 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은 권역별 비례대표제 도입과 비례대표를 확대하자는 주장이다. 국회의원 정수 300명을 전국 6개 권역으로 나눠 배분하고, 권역별로 지역구와 비례대표 의원을 뽑자는 안이다. 선관위는 지역구와 비례대표 비율을 2 대 1로 하자고 제안했는데, 이렇게 하면 지금보다 지역구 의석은 46석 줄고 비례대표 의석은 그만큼 늘어난다. 당연히 지역구 의원들의 거센 반발이 예상된다.
선관위 제안이 우리 정치의 고질인 지역주의를 완화하고 소수정당의 의회 진출에 도움이 된다는 점에서 국회가 이를 적극 수용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본다. 국회의원의 지역 대표성이 중요하긴 하지만, 시대 변화에 따라 지역 대표성보다 직능 대표성을 강화하는 게 다양한 층위의 유권자 목소리를 반영할 수 있다는 주장이 더 설득력이 있다.
이제 국회의 역할이 중요해졌다. 헌법재판소가 지난해 10월 국회의원 선거구의 인구 편차를 2 대 1로 줄이라는 결정을 내린 지 석 달이 지났지만 아직 국회에서는 선거법 개정 움직임조차 없다. 여야가 짬짜미해서 뭉개다가 총선이 가까워지면 현행 제도를 약간 다듬는 수준에서 그냥 넘어가려는 거 아니냐는 의혹을 살 만하다. 따라서 국회의원의 직접적인 이해관계가 걸린 선거제도 개혁을 국회 특위에만 맡겨두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국회는 지금이라도 국회의장 직속으로 선거제도 또는 정치제도 개혁을 위한 기구를 만들어 논의에 착수해야 한다. 이 기구엔 여야뿐 아니라 학계·시민사회 등 외부 인사들이 두루 참여해 의견을 개진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선거제도 개혁이 국민 공감을 얻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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