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가 형법의 간통죄 처벌 규정은 위헌이라고 결정했다. 100년이 넘게 존속돼온 실정법이자 미풍양속 보호라는 도덕적 지지를 받아온 형법 규정이 폐지되는 데 따른 사회문화적 파장이 작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현대적 형사사법 원칙에 비춰보면 당연한 귀결이며 오히려 때늦은 결정이다. 헌재는 1990년부터 2008년까지 네 차례에 걸쳐 간통죄 규정을 합헌으로 판단한 바 있다. 이제라도 위헌 결정이 난 것은 국가가 개인의 자유 영역에 지나치게 개입해온 우리 형사사법 체계 전반에 대한 성찰의 계기가 되는 상징적인 의미도 지닌다.
헌재는 다수의견에서 “비록 비도덕적인 행위라고 할지라도 본질적으로 개인의 사생활에 속하고 사회에 끼치는 해악이 그다지 크지 않거나 구체적 법익에 대한 명백한 침해가 없는 경우에는 국가권력이 개입해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일부일처제에 기초한 혼인제도 보호와 부부간 성적 성실의무라는 명분이 있더라도, 헌법이 보장하는 개인의 성적 자기결정권과 사생활의 자유를 침해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좀더 넓게 보자면, 국가가 옳고 그름의 판단자로서 추상적인 위험을 근거로 개인의 권리를 침해해서는 안 된다는 원칙을 확인하는 결정이다. 우리나라와 북한, 대만, 이슬람권 국가를 제외하고는 사실상 간통죄가 유지되는 나라가 없다는 점에서 세계적 추세에도 맞는다.
물론 법리적 정당성과는 별개로 부작용을 걱정하는 시선도 없지 않다. 오랫동안 유지되던 간통죄가 갑자기 폐지됨으로써 간통 행위에 정당성이 부여된 것처럼 착시할 수 있다는 우려가 대표적이다. 하지만 헌재 결정은 간통과 같은 성적 사생활의 영역에 국가가 형벌권을 동원하면서까지 개입해서는 안 된다는 의미일 뿐, 정상적인 혼인관계를 파탄시키는 부정행위에 대한 도덕적 비난마저 부인한 것은 아니다. 형법이 아닌 민사·가사법을 통해 법적 책임은 여전히 물을 수 있다. 헌재의 소수의견이 지적한 것처럼, 이혼 과정에서 경제·사회적 약자가 보호되지 못하고 자녀의 인권과 복리가 침해되는 일이 빚어져서는 안 될 것이다. 이 점에 대해선 국회와 법원이 새로운 상황에 맞춰 실질적 정의가 실현될 수 있도록 법과 판례를 적극적으로 보완할 필요가 있다.
이번 헌재 결정은 단지 간통죄라는 하나의 쟁점을 떠나 민주공화국에서 공권력과 개인의 관계라는 법철학적 문제를 성찰하는 계기도 제공한다.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 민주사회의 기반이 되는 표현의 자유, 결사의 자유, 양심의 자유, 사생활의 자유 등 개인의 자유 영역은 날로 위축되고 있다. 성적 자기결정권에 뒤지지 않는 본질적인 권리들인데도 국가권력이 과도하게 개입하기 때문이다. 개인은 국가의 결정이라면 내밀한 사생활까지도 내보여야 하는 피동적 존재가 아니라 불가침의 자유와 권리를 지닌 주권자라는 게 헌재 결정의 밑바탕이며, 이는 정치·경제·사회·문화 모든 영역에서 관철돼야 할 헌법 원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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