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27일 새 청와대 비서실장에 이병기 국정원장을 임명했다. 1월12일 새해기자회견에서 비서실장 교체를 암시한 지 46일 만의 인사다. 인사란 적시에 새로운 인물을 투입해서 분위기를 쇄신하고 조직에 활력을 불어넣는 의미가 있는 건데, 너무 질질 끌다 보니 그 의미가 반감됐다. 이렇게 장고한 결과가 지난 두 차례 대선에서 박 대통령을 열심히 도운 ‘친박’ 인사다. 더구나 이병기씨는 직전까지 정보기관의 수장을 지낸 인물이다. 정보기관 수장을 비서실장으로 발탁하지 못할 바 아니나, 가뜩이나 국정원에 대해 정치공작의 우려를 하고 있는 국민이 볼 때는 적절하지 않다. 박 대통령의 사람을 고르는 기준이 얼마나 제한적이고 자기중심적인지를 바로 드러내준다.
이날 대통령 정무특보로 임명된 주호영·김재원·윤상현 새누리당 의원 역시 모두 ‘원조 친박’ 또는 ‘신친박’으로 꼽히는 인사들이다. 원활한 국정운영과 민심 수습을 위해선 가장 유능한 인재들을 골라 써야 하는데, 박 대통령은 여전히 충성심 중심으로 ‘친박’만을 골라 쓰고 있으니 참으로 안타깝다. 이런 체제로 지금의 국정 위기를 제대로 헤쳐나갈 수 있을지 걱정이다.
그래도 비서실장 후보로 거론됐던 인사들 가운데 이병기씨를 발탁한 건 그나마 다행이라고 본다. 이병기 실장은 직업 외교관 출신으로, 친박 내부에서도 비교적 합리적이고 온건한 편으로 알려져 있다. 이병기 실장은 앞으로 ‘정윤회 파문’ 이후 제기됐던 수많은 비판과 제언을 되새겨보면서, 김기춘 전임 실장을 반면교사로 삼아 일을 하길 바란다.
우선, 비서실이 비공식 라인들이 암투를 벌이고 월권을 행사하는 곳에서 벗어나 공식 라인 중심으로 일을 하는 조직으로 탈바꿈해야 한다. 민정수석실을 중심으로 인사 추천과 검증이 이뤄지고, 대통령이 상황을 정확하게 판단해서 메시지를 던질 수 있도록 홍보수석실이 움직이며, 여당뿐 아니라 야당과도 빈번한 대화를 정무수석실이 하도록 해야 한다. 이 모든 활동을 비서실장이 지휘한 뒤 그 내용을 한점 가감 없이 대통령에게 얘기할 수 있어야 한다. 이른바 ‘문고리 3인방’이 청와대에 건재한 것을 두고 앞으로도 이들이 실권을 휘두를 것으로 보는 이들이 정치권엔 다수다. 새 비서실장은 문고리 3인방을 거치지 않고 바깥의 쓴소리를 대통령에게 전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게 이병기 실장이 사는 길이고, 대통령이 사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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