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권의 가계대출이 무서운 속도로 증가하고 있다. 7대 시중은행의 올해 1~2월 주택담보대출 잔액을 집계해 보니, 지난해 같은 기간에 견줘 무려 8.2배나 늘었다고 한다. 은행권 가계대출의 80% 이상을 차지하는 주택담보대출은 지난해 4분기에도 관련 통계 집계 이래 최대 증가 폭을 기록했는데, 올해 들어 증가세가 더욱 가팔라지고 있다. 가계부채 관리에 적신호가 켜진 셈이다. 그럼에도 정부는 ‘전반적으로 관리 가능한 수준’이라는 평가를 되풀이하며 느긋한 모습이다.
가계대출의 급증은 주택거래의 증가와 맞물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전셋값이 천정부지로 치솟고 금리가 떨어지자 주택 구입을 위한 은행 대출 수요가 증가한 것이다. 이처럼 빚내서 집을 사는 사람들이 늘어 주택시장은 비수기임에도 활기를 띠고 있다. 올 들어 2월까지 전국 아파트 매매거래 건수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9% 늘었다. 하지만 주택담보대출은 같은 기간에 800% 이상 폭증해 주택거래보다 훨씬 빠른 증가세를 기록했다. 결국 부동산 경기의 활성화를 가계빚 증가로 뒷받침하고 있는 꼴이다. 그만큼 가계발 금융부실의 위험도 더욱 커졌다.
정부는 이런 상황을 정책 효과로 판단하는 듯하다. 가계부채 증가를 감수하더라도 부동산 경기를 활성화하자는 게 최경환 경제팀의 일관된 정책기조였다. 지난해 월평균 가계부채 증가 추이를 보면, 7월까지는 3조원 남짓이었다가 최 경제부총리가 취임한 뒤에는 8조원으로 급증했다.
국내 가계부채 수준은 이미 위험 수위에 이르렀다. 2013년 말 기준으로 국민가처분소득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160.7%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135.7%)보다 훨씬 높다. 이처럼 과다한 가계부채는 가계의 재무건전성을 악화시킬 뿐만 아니라 금융기관의 자산 부실로 이어져 금융시스템 전반의 건전성을 위협하게 된다. 따라서 금융당국도 가계부채의 총량을 소득 증가 속도에 맞춰 관리하겠다는 원칙을 강조하고 있으나, 정부의 부동산 활성화 정책에 떠밀려 지금까지 빈말에 그치고 있다.
가계부채 문제가 금융 위기나 실물경제의 위기로 나타나면 손을 쓸 수가 없기 때문에 선제대응을 해야 한다. 무엇보다 경제성장률이나 가계소득의 증가 범위 안으로 총량을 억제하겠다는 원칙을 세우고 세부적으로 정교한 실행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취약계층의 부채 상환능력 개선은 발등에 떨어진 불이다. 가계부채가 관리 가능한 수준이라는 것은 정치적 수사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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