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크 리퍼트 주한 미국대사 피습사건을 계기로 청와대와 새누리당이 대대적인 공안몰이에 나섰다. 이번 사건을 종북세력이 저지른 공안사건으로 규정하고, 검찰에 대규모 공안수사팀을 꾸리게 하는 등 총공세를 펼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이 사건을 “한-미 동맹에 대한 공격”이라고 규정했고, 이병기 청와대 비서실장은 “헌법적 가치 부정 세력에 대한 근본대책 마련”을 언급하는 등 청와대가 앞장서 공안정국 흐름을 주도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움직임은 사건을 침소봉대하고 왜곡해 정치적으로 활용하려는 의도라는 의구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
사건을 ‘조직범죄’로 몰아가는 것부터 지금까지 드러난 정황과는 어긋난다. ‘조직적 테러 사건’이 되려면 사건을 기획·실행한 조직의 존재와 공범 등이 확인돼야 하지만, 김기종씨의 그동안 행적이나 극단적 행동에 대한 진보세력 내부의 거부감 등을 볼 때 그런 흔적은 별로 없다. 실제로 한·미 외교당국은 이번 사건을 극단주의자에 의한 단발 사건(isolated incident)으로 규정했다. 그런데도 정부여당은 수사 결과도 나오기 전에 서둘러 우리나라를 ‘미국 대사에게 테러를 저지르려는 조직원들이 우글거리는 나라’로 만들어버리고 있는 것이다. 그런 식으로 사건을 몰아갈 때 한국이 국제사회에서 받을 이미지의 타격이 얼마나 클지 등은 안중에도 없는 듯하다.
정부여당이 이번 사건을 빌미로 입맛에 맞지 않는 시민단체들을 탄압하고 입에 재갈을 물리려는 기도야말로 가장 경계해야 할 대목이다. 지금 공안당국이 하는 모양새를 보면 정전협정의 평화협정 전환이나 한-미 군사훈련의 위험성 등을 말하면 무조건 김씨의 ‘동조자’로 간주해 철퇴를 가하려는 태세다. 진보세력 안에서 김씨의 행동을 두둔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런데도 그와 비슷한 주장을 했다는 이유만으로 싸잡아 ‘헌법적 가치 부정 세력’으로 몰아가는 것 자체가 헌법적 가치에 반하는 반이성적 행동이다.
김씨가 참여정부 시절에 북한을 방문한 것을 문제삼아 새누리당이 야당을 공격하는 대목에 이르면 더욱 쓴웃음이 나온다. 김씨가 일곱차례에 걸쳐 북한을 방문했다지만 실제 내용을 보면 개인 자격으로 금강산 관광을 한차례, 단체의 일원으로 여섯차례 개성을 방문한 것이 전부다. 통일부마저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말하는 방북을 문제삼아 야당 책임론을 펼치는 것은 치졸한 정치공세일 뿐이다.
여권의 입장에서 보면 이번 사건은 매우 좋은 정치적 호재일 수 있다. 국정 실패에 대한 국민의 불신과 실망의 눈길을 다른 곳으로 돌리고, 통합진보당 해산으로 치러지는 4월 재보선에서 써먹을 좋은 선거운동 소재도 덤으로 얻었다. 하지만 ‘꼼수 공안몰이’로 여권은 정치적 국면전환에 성공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나라 꼴은 더욱 멍들어갈 것이다. 청와대와 새누리당은 도대체 언제까지 종북몰이라는 얄팍한 수에 매달리려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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