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크 리퍼트 주한 미국대사 피습사건을 계기로 새누리당에서 테러방지법 입법 및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방어) 한국 배치를 추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김무성 대표는 9일 국회에 계류중인 테러방지법을 하루빨리 입법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원유철 정책위의장과 나경원 국회 외교통일위원장은 이제 사드의 한국 배치를 공론화할 시점이라고 주장했다.
새누리당 지도부는 ‘종북세력이 백주 대낮에 주한 미국대사를 테러하는 마당에 테러방지법 입법을 서두르지 않으면 제2, 제3의 테러가 언제든 발생할 수 있다’는 주장을 편다. 그러나 상황을 좀더 차분하게 바라본다면 리퍼트 대사 피습과 테러방지법은 별개의 사안이며 테러방지법으로 리퍼트 대사 피습과 같은 사건을 막을 수 있는 것도 아니란 사실은 분명해진다.
우선 미국 정부는 리퍼트 대사 사건을 ‘폭력행위’(acts of violence)라고 규정하고 있지 ‘테러’(terror)라고 표현하지 않았다. 미국 정부는 일단 이번 사건을 김기종씨 개인의 우발적인 범행으로 보고 있다. 미국 정부가 아니라고 하는데 굳이 우리가 먼저 나서 이번 사건을 테러로 규정하고 테러방지법 제정을 추진하는 것은 앞서가도 너무 앞서가는 것이다. 김기종씨에 대한 정확한 수사를 통해서 만에 하나 배후가 드러난다면, 그때 테러라고 부를 수 있을지 판단하면 된다. 냉정하고 차분한 판단과 대처만이 한-미 동맹에 상처를 주지 않고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위상을 떨어뜨리지 않을 것이다.
더구나 2001년부터 여러 차례 테러방지법 입법을 논의했지만 그때마다 보류한 건 인권침해의 여지가 크기 때문이다. 최근 한국 청년의 이슬람국가(IS) 가입을 계기로 우리나라도 테러 무풍지대가 아니라는 사실이 확인되긴 했지만, 그럼에도 입법은 다양한 의견을 수렴해서 신중하게 논의할 일이다. 주한 미국대사 피습을 계기로 때를 만난 듯 단번에 밀어붙이듯 추진해선 안 된다.
고고도 미사일방어 체계인 사드의 한국 배치 문제는 사실 리퍼트 대사 피습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그럼에도 이 문제가 제기되는 배경엔, 이번 기회에 한-미 동맹을 강화해야 하니 그 징표로 미국이 원하는 걸 들어주자는 생각이 자리잡고 있다. 그러나 동북아시아 정세에 중대한 영향을 끼치는 사드 배치를 단지 ‘미국에 미안하니까 미국이 원하는 걸 하나 해주자’는 식으로 접근하는 게 과연 바른 판단인가. 리퍼트 대사 피습사건에선 충분히 미국의 입장을 고려할지라도, 그와 전혀 별개의 사안인 사드 문제에선 기본적으로 국익을 중심에 두고 판단하는 게 옳고 당당한 태도다. 미국은 자국 대사의 피습을 다른 사안과 연계하지 않고 냉정한 자세를 취하는데, 우리 정치인들이 먼저 나서 미국의 이해와 한-미 동맹의 이해를 동일시하며 발언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한-미 동맹의 진정한 발전을 위해서라도 여당이 중심을 잡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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