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 실시된 첫 전국동시조합장 선거에서 강력한 농협 개혁을 주장한 후보들이 다수 당선됐다. ‘좋은 농협 만들기 정책선거 실천 전국운동본부’의 농협 개혁 서약에 동참한 당선자 60명이 주인공이다. 비록 전체 농협 1151개에 견줘선 100명에 5명꼴이지만, 서약에 참가한 조합(141개) 대비 당선 비율은 42.5%에 이른다. 현장에서 잔뼈가 굵은 농민활동가 출신 당선자도 여럿이다. 이들이야말로 농협 개혁의 소중한 씨앗이다.
곪아 터진 농협 조직에 개혁의 칼을 대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음에도 그간 이렇다 할 성과를 거두지 못한 게 사실이다. 일선 현장의 조합장 선거에서부터 번번이 개혁의 물꼬가 가로막힌 탓이 크다. 농협 조합장이 쥔 권한은 막강하다. 대출 등 신용사업 이외에도 교육지원과 사업 명목으로 직접 주무를 수 있는 돈만 연간 수억원에 이른다. 이렇다 보니 조합장이 지역 유지 행세를 하며 각종 비리를 일삼는 경우도 허다했다. 정작 조합원인 농민들이 농협으로부터 소외되기 일쑤였다. 이번에 당선된 개혁 성향의 조합장들이 4년의 임기 동안 전국 현장에서 농협 바로 세우기에 적극 나서기를 기대한다. 벌써 이들을 중심으로 농협 개혁을 위한 상설 연대조직 결성 움직임이 일고 있다.
하지만 섣부른 기대는 금물이다. 개혁의 불씨를 더욱 키우기 위해선 풀어야 할 과제도 많다. 무엇보다 정책선거를 어렵게 만드는 현행 선거제도를 서둘러 손봐야 한다. 공공단체 위탁선거법의 적용을 받은 이번 선거에선 후보자와 유권자의 접촉 기회가 사실상 봉쇄됐다. 직접 명함 배부, 전화 및 문자메시지 전송 기회만 허용하다 보니, 후보 간담회나 정책토론회는 처음부터 불가능했다. 현 조합장 당선자 비중이 절반을 넘는 선거 결과는 ‘깜깜이 선거’의 현주소를 보여준다. 정책선거가 사라진 토양에선 온갖 인연과 유착관계로 얽힌 비리의 싹이 움트기 쉬운 법이다.
이번 선거에서도 되풀이된 악습의 사슬을 끊어내는 일 또한 녹록지 않다. 부정선거를 막기 위해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직접 관리에 나섰음에도 혼탁한 ‘돈 선거’는 막판까지 기승을 부렸다. 돈으로 상대 후보를 매수하는 사례도 사라지지 않았고, 무자격 조합원 논란도 끊이지 않았다. 당선자 가운데 이미 3명이 구속됐고 경찰 수사를 받고 있는 사람이 100명 안팎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수십곳에서 재선거를 치러야 할지도 모른다. 부정선거를 뿌리뽑을 대책도 시급히 마련해야 한다.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