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부산과 동두천의 미군기지 두 곳을 반환받으면서 미국 쪽이 환경오염을 정화하지 않은 채 넘겨받기로 했다고 한다. 이대로 가면 기름과 중금속 오염을 정화하는 데 드는 막대한 비용을 떠안게 된다. 이런 일이 벌써 몇번째인지 모르겠다. 가깝게는 2010년 부산 하얄리아 기지 반환 때도 오염 처리 비용을 덤터기 썼다. 한-미 두 나라가 기지 오염 처리의 규칙을 정해놓고도, 미국이 거듭 이를 무시하는 것은 더욱 큰 문제다. 허울뿐인 규칙이라면 강제성 있게 개정해야 한다.
기지를 쓰다 반환할 경우 오염 처리의 원칙은 간명하다. 원인 제공자의 부담으로 오염을 제거하는 것이다. 원칙을 적용해야 한다. 환경자원의 합리적인 이용과 배분 제도를 확립하는 데 유효한 국제적 관례다. 오염 처리 비용에는 오염 방지, 환경 복원, 피해자 구제, 오염 회피 비용을 모두 포함해야 한다는 게 최근의 조류다. 기지를 제공하거나 반환할 때 오염시킨 쪽이 오염을 제거한다는 원칙은 한-미 주둔군지위협정(소파)에도 명시되어 있다.
문제는 미국 쪽이 갖은 구실을 대면서 원칙 이행을 피하고 있다는 점이다. 두 나라는 2007년 23개 미군기지를 오염 치유 없이 반환받은 뒤, 나쁜 예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공동환경평가절차서(JEAP)를 만들었다. 이 절차에 따라 환경을 평가한 결과, 두 기지의 터 절반 가까이에서 카드뮴, 불소, 납 등이 위해한 수준으로 발견되어 위해도 판정을 받았다. 그런데도 미국 쪽이 ‘인간 건강에 대한 급박하고 실질적인 널리 알려진 위험’은 아니라며 처리 책임을 회피했다고 한다. 국제적 관례와 소파의 원칙, 공동 환경평가 절차의 취지를 무시하는 처사다. 남의 나라 땅을 빌려 쓰다가 돌려주는 일인 만큼 마무리가 깔끔해야 하는데, 그런 상식도 찾아보기 어렵다.
미국 쪽에 질질 끌려다니고 쉬쉬하며 문제를 덮으려고만 하는 외교부와 국방부도 문제다. 저자세와 협상력 빈곤을 비판받아 마땅하다. 한-미는 다섯 군데 미군기지 반환을 협상하던 중 우선 두 곳을 이렇게 처리하기로 합의했다고 한다. 이들 말고도 반환 예정 기지가 27곳이 남아 있다. 덩치가 매우 큰 용산기지도 포함된다. 결코 작은 문제가 아니다. 이런 상태로 슬금슬금 한두 군데씩 일을 처리하는 것은 옳지 않다. 개별 기지 반환 협상을 전면 중단하고, 소파를 개정하여 오염 처리의 원칙과 구체적인 절차까지 담도록 하는 새로운 접근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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