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호 국가정보원장 후보자는 16일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자신이 용산 참사를 ‘폭동’으로 표현한 것에 대해 “부적절했다”고 말하는 등 자세를 한껏 낮췄다. 국정원 대선개입 의혹을 강하게 부정했던 것에 대해서도 잘못을 인정하면서 “국정원은 불미스러운 과거와 절연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하지만 그가 인사청문회용으로 자세를 낮추고 국정원의 정치개입 근절을 약속한다고 해서 과연 이 시대 국정원을 이끌 적임자가 될 수 있을까. 그러기에는 그가 살아온 이력이나 언행 등에서 너무나 많은 결격사유가 발견된다.
우선, 이 후보자가 국정원장이 되는 것은 불미스러운 과거와의 단절이 아니라 불미스러운 과거의 연장이라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는 중앙정보부에서부터 정보기관 일을 시작해, 국정원으로 이름이 바뀌기도 전인 안기부 시절에 그곳을 떠났다. 그 시절 정보기관은 정치공작, 사찰, 인권탄압의 대명사였다. 어둡고 불행했던 시절의 ‘과거 인물’이 20년 뒤에 다시 등장해 국정원의 ‘미래’를 이끌겠다고 하는 것부터 한편의 코미디라고 할 수 있다.
사실 각종 기고문 등에서 표출된 이 후보자의 ‘잘못된 인식’은 일과성 실수가 아니다. 그것은 오랜 시간 정보기관에서 일하면서 뼛속 깊이 새겨진 ‘소신’이자, 과거 자신이 일했던 시절의 정보기관에 대한 일종의 ‘향수’라고 보는 게 맞다. 그가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5·16쿠데타에 대해 “국가안보를 강화한 역사적 계기”라고 말한 것은 그의 소신과 철학이 어떤 것인지를 잘 보여준다. 그의 이런 정치적·이념적 편향성은 결코 하루아침에 개선될 수 있는 성질이 아니다. 그가 이끄는 국정원이 ‘탈정치’ 행보를 보일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은 나무에서 물고기를 구하는 것과 같다.
이 후보자의 가족 중 무려 7명이 미국 시민권자 또는 영주권자인 것도 그냥 지나치기 어렵다. 박근혜 정부는 지난해 봄 재외공관장 인사에서 자녀가 이중국적인 고위 외교관 4명에게 자녀의 한국 국적 회복과 병역의무 이행을 조건으로 대사직에 내정한 바 있다. 그런데 이번에는 다른 자리도 아닌 국가 최고 정보기관 책임자에 미국 국적의 가족을 무더기로 둔 사람을 앉히려고 하니 이 정권의 인사기준이 도대체 무엇인지 알 길이 없다. 우리나라에 국정원장을 맡을 사람이 그토록 없다는 말인가. 시대 흐름에 맞지 않는 구시대 인물인 이 후보자는 아무리 봐도 새 시대의 국정원 수장으로 적절치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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