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한번쯤은 병원 응급실에서 장시간 의사를 기다리거나 병상조차 얻지 못해 고생했던 기억을 갖고 있을 것이다. 최근 보건복지부가 전국 응급의료기관 415곳을 평가한 결과, 무려 10시간 이상 응급실에서 대기해야 하는 병원이 20곳에 이르렀고 중증 응급환자 100명 중 4명은 3곳 이상 병원을 옮겨다닌 것으로 나타났다. 응급실의 과밀화 지수는 2013년 50.7%에서 지난해 52.8%로 높아졌다.
이런 현상의 원인으로 환자 쪽의 과잉대응이 지적되기도 한다. 꼭 응급처치를 필요로 하지 않는 증상인데도 응급실로 달려간다거나 가까운 병원을 놔두고 유명 대형병원부터 찾는 바람에 쏠림 현상이 빚어진다는 것이다. 하지만 환자 처지에서는 한밤중이나 휴일에 몸에 이상이 올 경우 달리 방법이 없는 게 현실이다. 갑자기 아이가 아프기라도 하면 부모들은 다급할 수밖에 없다. 밤 12시까지 어린이 환자를 받는 달빛어린이병원이 지난해 9월부터 전국 9개 병원에서 시범 운영하면서 넉 달 만에 10만명 이상을 진료한 것만 봐도 응급의료 수요를 짐작할 수 있다. 대형병원으로 응급환자가 몰리는 것도 응급의료체계 전반에 대한 신뢰가 쌓이지 않았다는 방증이다.
대도시는 그나마 낫다지만 소도시나 농어촌 등은 사정이 더 열악하다. 이번 보건복지부 평가에서도 시설·장비·인력 등 법정 기준을 충족하지 못한 의료기관 67곳 중 63곳이 지역 응급의료기관이었다. 13일 전남 신안 가거도에 응급환자를 호송하러 갔던 헬기가 추락한 사고도 도서지역의 취약한 응급의료 여건과 관련지어 생각해볼 일이다. 여러 문제가 겹치면서 우리나라의 예방 가능한 응급환자 사망률은 미국(15%)의 두 배가 넘는 32%에 달하는 실정이다.
후진적인 응급의료체계를 개선하려면 무엇보다 전문인력 확보가 우선일 것이다. 응급의학과는 레지던트(전공의) 모집에서 지난해 10년 만에야 정원을 채울 정도로 외면받고 있다. 근무는 힘들면서 보상은 적은 분야를 선택하지 않는 것은 인지상정이라고 하겠다. 응급의료가 시장 논리로는 실패할 수밖에 없는 영역이라는 지적에 귀기울여야 하는 이유다. 갈수록 민영화·상업화에 치우치고 있는 정부의 의료정책 방향을 공공성 강화로 전환해야만 응급실 과밀화 문제도 풀 수 있다. 정부는 땜질식 처방에 머물지 말고, 응급실 의료진이 자부심을 갖고 일할 수 있고 애꿎은 응급환자들의 희생을 막을 수 있는 근본적인 대책을 서둘러 마련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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