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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사설] 보건복지부의 황당한 ‘취재 방해’

등록 2015-03-18 18:51

보건복지부가 언론사를 상대로 보도 기사의 옳고 그름을 다투던 끝에, 취재기자와 취재원 사이에 오간 사적인 전자우편을 입수해 일방적으로 공개하는 일이 벌어졌다. 언론의 자유로운 취재활동을 위협하고 위축시킬 우려가 있는 행위다.

보건복지부는 박근혜 대통령의 중동 순방 성과가 부풀려졌다는 며칠 전 <한겨레> 보도에 이견을 품은 모양이다. 이 보도는 우리 제약업계가 중동 지역에 더 많이 진출하게 되었다는 정부 발표에 의문을 제기하는 내용이었다. 보건복지부가 보도 내용을 반박하는 것까지는 있을 수 있다. 그러나 <한겨레> 기자가 취재를 위해 중동 국가 제약업체 관계자와 주고받은 메일을 해당 업체한테서 넘겨받아 보도자료에 덧붙여 공개한 것은 심각한 취재 방해 행위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번처럼 정부가 기자와 취재원의 대화 내용을 공개하면, 기자의 취재 방향과 업계의 누가 취재에 응했는지 등이 낱낱이 드러나게 된다. 관련 업계 사람 누구라도 언론의 후속 취재 때 몸을 사리게 될 게 뻔하다. 공익을 대변하여 권력의 잘못된 사용을 감시하려는 언론의 활동이 위축될 가능성이 커진다.

나아가 국민 일반의 기본권과도 관련성이 큰 문제다. 이런 일이 공공연히 벌어지면 국민 누구라도 마음 편하게 이메일을 주고받기 어려울 것이다. 자신의 이메일이 언제 남의 손에 들어가, 자신의 뜻과 관계없이 공개될지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이다. 세상은 거대한 감옥이 되어 늘 감시당한다는 느낌을 갖고 살게 될 것이다. 통신과 대화의 비밀을 침해당하면 인간은 존엄성을 유지할 수 없다.

우리 헌법은 17조에서 모든 국민은 사생활과 비밀의 자유를 침해받지 아니한다고 규정했다. 18조엔 모든 국민은 통신의 비밀을 침해받지 아니한다고 적혀 있다. 형법과 통신비밀보호법, 우편법 등은 비밀침해죄를 규정하고 위반자를 엄벌하도록 하고 있다. 봉함하거나 그밖에 비밀장치를 한 다른 사람의 편지, 문서 또는 전자기록 등을 개봉한 행위가 위법에 해당된다. 복지부 관료들이 이메일을 입수하는 과정에서 어떤 힘을 썼는지도 의문스럽지만, 공중을 상대로 이를 공개한 것은 위법의 소지가 크다.

어처구니가 없다. 박근혜 정부 들어 취재와 관련한 정부의 관여나 고발이 잇따르고 있는 점을 보면, 이번 일을 예사롭게 넘길 수 없다. 복지부뿐 아니라 박근혜 정부의 언론관이 얼마나 저급한지를 잘 보여주는 사례다. 복지부는 이번 일에 대해 철저히 조사하고 책임을 묻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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