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평택 쌍용자동차 공장 안 70미터 높이의 굴뚝에서 농성을 벌이던 쌍용차 해고자 이창근(금속노조 쌍용차지부 정책기획실장)씨가 23일 땅을 밟았다. 지름 8미터 남짓한 공간에서 칼바람을 이겨내며 겨울을 보냈던 그였기에 일단 ‘무사 착륙’ 소식은 참으로 반갑다. 지난해 12월13일 함께 굴뚝에 올랐던 김정욱(사무국장)씨가 10여일 전에 먼저 내려온 뒤 그가 느꼈을 번민과 외로움은 이해되고도 남는다.
두 해고노동자가 땅에 내려온 것을 계기로, 2009년 정리해고와 점거농성 사태 이후 6년 이상 끌어온 쌍용차 문제도 잘 풀릴 수 있기를 기대한다. 대외환경 변화와 기업 경쟁력을 먼저 고민할 수밖에 없는 경영진과, 하루아침에 일터에서 내몰린 상처를 지닌 해고자 사이의 거리를 좁히는 일이 말처럼 쉽지는 않을 것이다. 그 때문에 올해 1월21일 65개월 만에 재개된 노사 교섭이 여전히 양쪽의 입장이 갈린 채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하지만 엉킨 실타래를 풀 희망이 전혀 없는 건 아니다. 24일 열리는 쌍용차 정기주주총회에선 법정관리인 자격으로 출발한 이유일 사장이 물러나고 최종식 사장이 경영 지휘봉을 넘겨받는다. 해고자 복직 등 의사결정의 주체가 명확해질 수 있다. 새 경영진이 들어선 이후 양쪽의 교섭에서 하루빨리 소중한 결실이 맺어졌으면 좋겠다. 정리해고 이후 이미 26명의 귀한 목숨을 잃지 않았나.
‘평택의 결정’이 중요한 이유는 또 있다. 쌍용차 문제는 한쪽으로 기울어진 한국 사회의 축소판이다. 두 해고자가 목숨을 걸고 굴뚝 위에 오를 수밖에 없었던 직접적 계기도, 법의 울타리마저 그들을 내팽개친 데 있다. 지난해 11월 대법원은 정리해고 무효 확인소송에서 “2009년 정리해고는 적법했다”며 원고가 승리했던 원심을 파기했다. ‘경영상의 필요’라는 명분으로 사실상 해고의 자유를 경영진에 안겨준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 때문에 이달 말로 시한이 잡힌 노사정위원회 노동시장구조개선특별위원회의 노동시장 구조개편 작업에서 경영상 해고요건 완화 등 무게 추가 회사 쪽에 더욱 유리한 쪽으로 쏠릴 조짐을 보이는 건 극히 우려스럽다. 법과 제도마저 자신들을 외면할 때, 버림받은 자들은 ‘인간의 땅’이 아닌 곳으로 옮겨간다. 지금 이 순간에도 경북 구미의 스타케미칼 해고자, 에스케이(SK)브로드밴드와 엘지(LG)유플러스의 인터넷 설치·수리기사 등 인간의 땅이 아닌 곳에 사는 사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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