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새 학기가 시작되는 3월이면 어김없이 대학 신입생들을 상대로 한 선배들의 폭력적인 규율잡기 행태가 도마에 오른다. 언론에서 본격적으로 이 문제를 공론화한 지도 10년은 족히 넘은 듯한데, 얼마나 ‘자랑스런’ 전통이라고 여전히 되풀이되고 있는지 모르겠다.
<한겨레>가 23일 현장 취재한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신입생들의 ‘구보’ 프로그램은 집단기합이나 다를 바 없었다. 매주 두 차례씩 저녁에 3시간가량 선배들의 감시 아래 혹독한 체력훈련을 받는다고 한다. “경찰공무원을 양성하는 기관으로서 기초체력이 필요한 1~2학년 학생들에게 필요한 과정”이라는 학과장의 설명은 어이가 없다. 교육 목적상 필요하다면 정규교육에 포함할 일이지 이렇게 엉뚱한 방식으로 진행해서야 되겠는가. 이 학과는 2006년에도 폭력적인 신입생 길들이기로 비판받은 바 있다. 이런 풍토에서 민주적이고 합리적인 경찰공무원이 길러질 리 없다.
신입생 길들이기 과정에서 직접적인 신체폭력은 과거에 비해 줄었다고 하지만, 성적·문화적 폭력으로 번지는 양상은 더욱 우려스럽다. 최근 서강대에서 벌어진 성폭력적인 오리엔테이션 행사는 일일이 묘사하기도 창피할 만큼 저질스럽다. 단국대 한 학부에서는 선배들이 신입생들에게 화장 금지, 군대식 어투 사용, 택시 이용 금지 등 ‘행동 규정’을 강요한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다.
선배라는 알량한 지위를 이용해 후배들에게 부당한 억압을 가하는 행위는 우리 사회에 팽배한 ‘갑질’을 떠올리게 한다. 선배들이 이를 통해 추구하는 게 일사불란한 위계질서라면 이 또한 시대에 역행하는 길이다. 이런 문화에 순치된 학생들은 결코 우리 사회가 기대하는 인재도 지성인도 아닐 것이다.
잘못된 전통을 비판 없이 답습하는 학생들도 문제지만 이런 현실을 뻔히 알고도 방치해온 대학 당국은 더 호된 비판을 받아 마땅하다. 특정 대학, 특정 학과의 문제가 공개적으로 지목돼야만 마지못해 반성하는 모습을 보일 뿐이다. 점수와 스펙으로 학생들을 골라 뽑는 데만 집중하면서 정작 선발한 학생들을 제대로 교육하는 데는 무능한 요즘 대학들의 모습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대학들이 사명에 걸맞은 자율과 창의 교육에 힘쓴다면 저런 황당한 일들은 진작에 사라졌을 것이다. 대학 당국은 학생들의 폐습을 사소한 일탈로 치부할 게 아니라 그 대학의 정체성과 위상에 관련된 문제로 인식하고 대처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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