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흘 뒤면 제주4·3사건 67돌을 맞는다. 1948년에 일어난 이 비극적 사건으로 당시 제주도민의 10% 정도인 2만5천~3만명이 숨졌다고 정부 보고서는 적고 있다. 오랫동안 ‘남로당 반란과 정부군의 진압’으로만 여겨졌던 이 사건이 ‘국가권력에 의한 주민 학살’로 재조명된 건 불과 15년 전이다. 그래서 정부는 2003년 제주도민에게 공식 사과했고, 야당뿐 아니라 여당인 새누리당도 선거 때마다 ‘상생과 화해의 정신으로 4·3사건을 완전 해결하겠다’고 약속했다.
박근혜 대통령 역시 다르지 않다. 그는 대통령후보 시절 “4·3은 제주도민뿐 아니라 전 국민이 가슴 아파하는 사건이다. 국가 추모기념일 지정을 비롯해 도민 아픔이 가실 때까지 최대한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그에 따라 지난해부터 제주4·3 위령제는 국가 추념식으로 격상됐다. 하지만 제주도민의 아픔을 끝까지 보듬겠다는 나머지 절반의 약속은 지켜지지 않고 있다. 제주도의 정당·단체들이 수없이 요청했는데도, 지난해 그랬듯이 올해도 박 대통령은 국가기념식으로 격상된 추념식에 참석하지 않을 계획이라고 한다. 아픔이 가실 때까지 노력하겠다면서, 도민들이 강력하게 바라는 4·3 추념식 참석을 박 대통령이 꺼리는 건 이해하기 어렵다.
제주도 현지 언론 보도를 보면, 위령제를 지내는 4·3 희생자 1만4231명 가운데 103명에 대해서 보수단체들이 ‘4·3사건 발발에 직접 책임이 있는 남로당 제주도당의 핵심간부 등으로, 희생자 명단에서 제외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게 대통령의 추념식 참석을 막는 직접 요인이라고 한다. 그러나 희생자의 재심 문제와 대통령의 추념식 참석을 연결짓는 건 옳지 못하다. 이미 정부 공식 조사가 끝난 사안을 재심사하자는 주장도 유족 가슴에 못을 박는 일이지만, 설령 103명의 행적에 논란이 있다 하더라도 중공군 유해까지 발굴해 송환해주는 마당에 추념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그 비율도 전체 희생자의 1%에 불과하다. 그걸 이유로 추념식 참석을 피하는 건 내심 4·3사건을 여전히 좌익세력의 반란으로 보기 때문이란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수십년 전 사건의 확인되지 않은 주장을 문제삼기 시작하면, 남북이 분단된 우리 현실에서 ‘상생과 화해’ ‘국민 통합’은 영원히 공허한 구호에 그칠 수밖에 없다.
박 대통령의 4·3 추념식 참석은 소통과 통합의 상징적 징표가 될 수 있다. 청와대는 구더기 무서워 장을 담그지 못하는 우를 범하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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