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대기업 등기 임원들의 지난해 연봉이 일제히 공개됐다.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 개정에 따라, 상장사들은 2013 회계연도 때부터 연봉 5억원이 넘는 등기 임원의 개인별 보수 내역을 이듬해 3월31일까지 공개해야 한다. 지난해 최고 연봉의 주인공은 정몽구 현대자동차 회장으로, 정 회장은 계열사 3곳으로부터 모두 215억7000만원을 받았다.
시행 2년째를 맞는 이 제도는 여전히 허점투성이다. 공개 대상을 등기 임원으로 못박은 탓에, 상당수 재벌 총수 일가의 연봉은 여전히 베일에 감춰져 있다. 삼성그룹 총수 일가에선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의 연봉만 공개됐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을 비롯해 이재용 부회장, 이서현 제일모직 패션부문 경영기획담당 사장 등은 모두 미등기 임원이다. 올해 들어 새로 도입한 ‘기준서식’의 효과도 미미했다. 고위 임원에게 10억원이 넘는 상여금을 주면서 달랑 ‘준법 및 윤리경영 정착에 기여’, ‘회사의 발전 위해 리더십을 발휘한 점’을 보수 산정 이유로 적은 사례도 있다.
경영진 연봉 공개는 기업경영의 투명성을 높이기 위한 세계적 흐름이다. 현행 제도가 허울뿐인 요식행위로 전락하는 걸 막으려면 이제라도 서둘러 허점을 촘촘하게 메워야 한다. 공개 대상을 기업경영에 실질적 권한을 쥔 인물로 확대하고 보수 내역도 더욱 구체적으로 명시하도록 하는 게 맞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는 등기 여부와 관계없이 3인의 집행 임원을 포함해 10만달러(약 1억1000만원)가 넘는 상위 5명의 연봉은 무조건 공개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심지어 회사가 임원에게 골프클럽 회원권을 사줬거나 자가용 비행기를 이용하도록 편의를 봐준 경우에도, 그 편익을 금액으로 환산해 공개해야 한다.
투명성 강화와는 별개로, 분배 형평성의 관점에서 경영진의 고액 연봉이 과연 적정한가에 대해서도 진지하게 논의를 시작해볼 시점이 아닌가 싶다. 10대 그룹 상장사 78곳을 기준으로, 가장 높은 임원 연봉과 직원 평균 연봉 격차는 평균 35배였다. 그나마 사정이 매우 나은 편이다. 시간당 5580원인 현행 최저임금을 연봉(주당 40시간 기준)으로 환산하면 1400만원 남짓 된다. 단순 셈법으로 무려 1540년을 일해야 정몽구 회장이 지난 한 해 동안 받은 연봉을 벌 수 있다는 얘기다. 최저임금조차 받지 못하는 노동자가 227만명(2014년 기준)에 이르는 게 지금 우리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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